오만했던 나
일반적으로 난임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난관수종과 자궁 내막종 수술을 마치고 대망의 첫 시험관에 돌입했다. 일반적인 시험관 시술의 성공 확률은 약 33% 정도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경우'라면 시험관을 세 번하면 한 번은 성공하는 것이 이론상 맞는 계산이다. 난임시술을 진행하기 전에 여러가지 검사를 하는데 가령 정자 검사, 난관과 자궁의 기능 검사, 호르몬 검사 등을 통해 임신을 어렵게하는 이상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해주면 시험관 1차 만에 임신에 성공하는 '로또'를 맞을 수도 있다.
나는 나대로 검사와 수술을 진행했고 남편은 남편대로 정자 검사와 이를 통한 영양제를 처방 받았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심각한 난임의 문제가 아닌 이상,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지거나 수가 부족한 경우에는 영양제로 극복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엄청 많은 정자들 중에서 상태 좋은 아이들을 현미경으로 골라내 시술에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난임 치료에서 남성들의 문제는 지극히 등한시 되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남편도, 나도,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난자 채취에 들어갔다.
모든 시험관 시술은 생리 2,3일차에 시작된다. 난자 채취를 위해서 생리 2일차에 병원을 방문하면 난자를 여러개 키워주는 호르몬 주사와 약이 처방된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자가 주사를 놓는 과정이 처음에는 엄청 무섭고 두려운데, 사실 채취를 위한 주사는 이식 과정에서 맞는 주사에 비하면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주사를 맞고 배란일 즈음이 되면 뱃속에서 난자들이 자라고 있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더부룩+불편+이물감 등등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찝찝한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을 즈음, 선생님이 두 번정도 병원에 불러서 난자의 크기를 확인하시고 채취일을 정해주신다. 이때 난자의 갯수를 대략확인할 수 있는데 초음파 상으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고 난자들끼리 붙어 있어서 안보이는 애들도 있고 너무 작아서 밖에서 키워야하는 애들도 있고, 가지각색이다. 어쨌든 채취가 다가오면 배란억제 주사가 추가가 되고, 마지막 날에는 배란을 유도하는 주사를 시간 맞춰 맞게 되면 채취일이 된다. 이 주사 맞는 시간을 맞추는 게 진짜 엄청난 스트레스다! 핸드폰 알람은 정말 필수.
일반적인 난임병원에서 목표로 하는 채취 난자 갯수는 10개 내외다. 많이 나올 수록 좋은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 이상 많이 나오면 난포 안에 난자가 없는 공난포 위험도 있고 무엇보다 배에 복수가 엄청 차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다난성 난소증후군 있는 분들은 종종 30개 이상씩도 나오고 그러는데 그렇게 되면 그 이후에 난소과자극증후군이 와서 열도 나고 복통으로 응급실도 가고 엄청 고생들을 하더라.
어쨌든 나는 8개가 채취되었고 약간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게 채취는 종료. 남편도 정자를 채취해서 수정에 들어갔다.
노원구의 삼신할배로 소문난 원장님은, 손기술이 정말 좋은 분이시다. 여러 병원, 여러 의사를 거치면서 느낀 거지만 손기술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첫 채취를 하고 나는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출근을 했고 5시까지 근무를 멀쩡히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 이후 여러 차례 채취를 하면서 그게 다 원장 선생님이 채취를 잘 해서라는 걸 깨달았다. 채취하고 보통은 몸살기가 있어서 멀쩡하게 근무를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든 그로부터 며칠 후 이식 날짜가 정해졌다.
그 사이 나는 이온음료를 마시라는 특명을 받았다. 채취를 하는 과정에서 체내에 자극이 가기 때문에 복수가 찰 수 있는데 이온음료를 많이 마셔주면 이를 방지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권장한 양은 하루 1~2리터였는데 이건 나한테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다. 내가 평소 마시는 액체류는 커피와 술이 전부(....)였고 게다가 이온음료는 너무 맛이 없다........ 포카리스웨트의 그 밍숭밍숭한,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그런 맛.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맛. 하지만 이 때 선생님 말 안듣고 이온음료 안 마시면 진짜 후회할 일이 생긴다. 그러니까 꼭 이온음료를 마셔야 한다.
사실 시험관 저차수일 때에는 맛이 없어서 곤혹이었는데 차수가 조금씩 올라갈 수록 칼로리 걱정이 안 될수가 없었다. 시험관을 하다보면 호르몬도 들쑥날쑥해서 온갖 이상 증상이 생기고 또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자꾸 챙겨먹다보니 살이 야금야금 찌기 시작한다. (물론 전문가들은 시험관 시술 중, 임신 중 보양식을 먹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건 전적으로 내 기분 탓에 먹는 건데 살이 찐다는 문제가 생기는 거다...) 아무튼 나중에는 제로 칼로리 이온음료도 찾아서 먹게 되는데, 그 맛은 더욱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맛.... 그렇다. 맛은 포기하자.
첫 병원에서 나는 두 번의 이식 모두 신선으로 진행했다. 채취 후 수정된 수정란을 냉동하지 않고 바로 자궁으로 이식하면 신선이식, 냉동을 해두고 다음달에 해동해서 이식을 하면 냉동이식이라고 부른다. 수정란을 냉동으로 이식할지, 신선으로 이식할지 판단 할 때에는 여러가지 변수들이 고려된다. 과배란 과정에서 호르몬 수치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이식을 할 수가 없어서 냉동으로 진행이 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일정이 있거나 의료진의 판단 상 냉동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냉동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터넷 상에는 무수한 설들이 돌아다닌다. 신선이 유리한지, 냉동이 유리한지. 그리고 수정란을 3일 배양시킨 배아와 5일 배양시킨 배아 중 어느 것이 확률이 더 높은지. 사실 나도 이 모든 가설에 목숨을 걸던 시절이 있었다. 3일 배양보다 5일 배양 배아가 착상 확률이 높기 때문에 법으로 이식 갯수가 정해져 있다. 만 35세 미만은 5일 배양 배아 1개, 3일 배양 배아 2개를 이식할 수 있고 만 35세 이상이 되면 5일 배양 배아 2개, 3일 배양 배아 3개까지 이식이 가능하다. 만 35세부터 고령임산부이기 때문에(....)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갯수를 더 넣게 해주는 거다.
그치만 고차수가 되고 나서 깨달은 건, 그 모든 이론은 나를 빗겨간다는 것. 내가 아무리 5일 배양 감자 배아를 이식해도, 나는 임신에 실패했다. 오히려 3일 배양 배아를 이식하고 나서 임신에 성공했는데 밖에서 기르는 것보다 하루라도 더 엄마 뱃속에서 크는 게 더 낫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엄청 와닿았다. 그러니까 이런 무수한 이론들보다 나의 상황에 맞게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걸 전혀 알지 못 했고 관심도 없었던 나는 삼신할배 원장님이 시키시는 대로 5일배양 배아를 신선으로 이식했다. 수술도 다 했고 시험관 주사도 열심히 맞았으니 어쩌면 나한테도 1차에 임신이 될 거라는, 로또에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집에 돌아왔다. 이날 집에 돌아오는 내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짠하고 웃기고 슬픈지 모르겠다. 왠지 걸음걸이도 조심해야 할 것만 같고 차도 덜컹 거리면 안 될 것 같고, 마음은 이미 임산부... ㅋㅋ 고차수가 되고 나서는 뭐 조심따위 전혀 없었지만 1차 때는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게 이식을 하고 나면 10일에서 12일 후 쯤 진료를 보러 가게 된다. 배양일 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진료 보기 전에 테스터기로 임신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말인즉, 이식 이후부터 임테기의 노예가 된다는 이야기.... 그때부터 난임카페의 검색어는 '임테기', '언제', '단호박' 따위가 된다. 임테기가 아무리 단호박 같이 반응이 없어도 주사나 질정을 계속 유지해야하는데 이때가 마음이 제일 슬프다. 임신이 아닌 것 같은데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계속 내 배에 주사를 찌르는 그런 상황.. 임신 초기에는 피검사를 해야 정확한 임신 여부를 알 수 있다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시험관 하면서 제일 무너지는 시간은 이 시간이다.
나의 첫 시험관 이식은 피검수치 0점대로 끝이 났다.
(이 정도면 배아가 자궁벽과 하이파이브조차 안 한 수치...)
[난임용어]
난소과자극증후군 : 호르몬 주사로 인해 난소가 과자극되면서 나타나는 합병증. 가볍게는 구역질, 복부 불편감 정도이지만 심하면 패혈증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채취이후에는 주의 깊게 몸 상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온음료 처방을 절대 무시 해서는 안 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