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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l 06. 2020

[밤에 읽어주세요] 밤은 지나가고


글.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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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연인의 얼굴을 (더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이 결국엔 그 사랑의 약자이다.     


철컥, 문이 열렸다. 재스민 향기.

나는 당신의 꿈속으로 들어갔다. 등불 하나 없이. 눈빛을 앞세우고. 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걸어서 어둠을 통과하자 설원이 드넓게 펼쳐졌다. 아름다워. 하마터면 속삭일 뻔했다. 꿈에서는, 특히나 타인의 꿈에 잠입했을 때는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꿈은 비눗방울처럼 작은 말소리에도 터져버리고 마니까. 나는 침묵한 채 눈밭을 걸어 나갔다. 모든 방향으로 열린 시공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외투 호주머니에서 버찌를 한 알씩 꺼내 떨어뜨렸다. 붉은 버찌가 푹신한 눈 위로 내려앉는 순간마다 당신의 비음이 들려왔다. 숨, 바람이 불었다. 발자국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내일 아침 당신은 이 모든 걸 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음(無音), 설원 위에 세 개의 푸른 봉오리가 나타났다. 그 형상은 꿈이 아니더라도 더러 시로 읽히고 나는 해독할 수 있었다. 그 봉오리들이 사랑의 비밀이라는 것을.     


너는 해가 떠오른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 숲에서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나타나 너를 두드리면 너는 가슴을 열어 기러기 한 마리를 꺼내 그에게 줄 것이다. 기러기를 건네받은 사람은 너에게 돌을 건네고.     


나는 너의 코, 그 꿈의 능선을 넘었다. 해가 진다는 사실을 잊은 채 너는 그 선 위에서 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새가 네 가슴으로 돌아온다면 너는 그 새에게서 사랑의 복화술을 배워 그 문자를 바위에 새기리.     

나는 너의 입술, 그 꿈의 호수에 빠졌다. 해가 달의 뒤편으로 숨는다는 사실을 잊은 채 너는 바위처럼 있었다. 나는 너를 쓰다듬으며 그것에 새겨진 사랑의 언어를 읊조렸다. 입술을 떠난 진실의 기포들은 수면에 부딪혀 사라지리.     


나는 호수에서 나와 능선을 넘어 숲을 지나 새빨간 버찌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당신의 꿈에서 벗어났다.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알았기에. 당신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잠든 당신의 얼굴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입술 위로 일렁이는 그림자들. 나는 벽을 짚고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중략)


위 글은 빅이슈 7월호 2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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