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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ul 28. 2020

[성현석 칼럼] 똑똑한 그들이 틀리는 이유


글. 성현석     


보건 전문가가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항체 검사를 했다. 검사 대상자 가운데 한 명이 항체를 갖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매체는 이렇게 보도했다. 항체는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회복하면 생긴다. 따라서 1000명 가운데 1명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회복됐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인구가 약 5000만 명이라는 비율을 적용하면, 약 5만 명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국에는 약 3만 7000명, 대략 4만 명이 숨은 감염자다. 코로나19에 감염됐으나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은 맞지만, 추론이 틀렸다     

이런 논리 전개는 타당한가? 따져볼 대목이 많다. 우선 첫 번째 문장.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고 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 전체 가운데 항체를 보유한 인구를 추론했다. 1000명이라는 표본이 제대로 구성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 바이러스에 특히 취약한 집단 가운데서 1000명을 골랐다면, 조사 결과는 실제보다 항체 보유 인구가 많아진다. 하지만 이 조사는 훈련된 전문가가 진행했으므로, 표본은 신중하게 추출됐다고 하자.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나. 해당 매체는 그렇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따져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인구 전체를 조사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표본을 골라서 조사했다. 이는 인구 전체에 대한 결과를 추론하기 위한 목적이다. 말 그대로 추론이므로, 정확한 값은 아니다. 우리가 통념상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정확도를 얻기만 하면 된다. 1000명 가운데 1명이 항체를 갖고 있다고 조사됐다.


먼저 확인해야 할 점은, 이 조사가 틀렸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다. ‘위양성’이라고 부르는 경우다. 요컨대 실제로는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으나, 감염돼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다.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1000명 가운데 항체 보유자가 한 명도 없으므로, 항체 보유 비율이 0이라고 판단해서, 인구 5000만 명에 0을 곱해야 하나. 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항체를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코로나19에 감염됐으나 회복된 인구, 즉 격리 해제 인구가 1만 1000여 명이다. 이들은 항체를 갖고 있다. 앞서의 조사에서 ‘위양성’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면, 이처럼 엉터리 추론이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위양성’ 확률의 아주 작은 차이에 따라, 최종적인 추론 결과는 엄청나게 바뀐다.


그런데 이런 식의 표본 조사를 흔히 하지 않나. 그게 다 엉터리라는 건가. 예컨대 선거 때마다 하는 여론 조사도 아주 작은 표본을 조사한 결과 아닌가. 역시 잘 따져봐야 한다. 1000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300명이 A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300명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는 A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데, A 후보를 지지한다고 거짓말을 했을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코로나19 항체 검사의 ‘위양성’ 사례와 마찬가지다. 코로나19에 실제로는 감염되지 않았는데, 감염됐다는 결과가 나온 것과 비슷하다. (중략)



하한선을 넘길 때까지만 전력 질주하는 그들     

지루한 숫자 이야기를 너무 길게 했는데 어쩔 수 없다. 코로나19 감염 문제는 생명과 관련돼 있고, 잘못된 보도는 방역을 망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주장대로라면, 무증상 감염자 숫자가 상당하다는 뜻인데, 만약 그 숫자가 실제보다 과장돼 있다면, 언론 보도를 접한 시민은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질 수 있다. 감염돼도 죽거나 크게 고생할 확률이 낮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항체 보유자가 많다면, 본인이 그 안에 포함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에 소홀해진다면, 방역은 더 어려워진다.


물론 이 숫자가 실제보다 축소돼 있어도 문제다. 시민이 너무 겁에 질리면, 경제 활동이 더 위축된다. 중요한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추론이 개입돼야 한다면, 그 추론은 수학적인 논리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 언론의 업보일 테다. 앞서 소개한 보도는 이례적인 사례가 아니다. 기자들은 ‘팩트(Fact,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취재 내용이 사실이기만 하면, 그 뒤론 더 따져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팩트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매우 엄격하게 따지는 기자들이 추론 오류에 대해선 몹시 관대하다. 언론 보도의 목적은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다. 추론과 해석이 틀렸다면, 사실관계가 아무리 정확해도 진실로부터는 오히려 멀어진다.  (중략)


추론 오류는 지식이나 지능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물리학 박사 출신 전직 국회의원이 총선 개표 부정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주장은 고등학생 수준의 수학 지식만 갖고 있어도 오류가 확인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뒀으며, 물리학 교수로 오래 일했던 사람이 논리적 함정에 빠졌다. 이처럼 대개의 시사 사안에서 벌어지는 추론 오류는 지식이나 지능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태도 문제다.  (중략)


시험 합격을 위해선 영혼을 ‘갈아 넣으며’ 경쟁에 몰두하지만, 합격 이후론 기득권에 안주하는 이들도 많다. 고용이 불안하던 시절에는 열심히 연구했는데, 정교수가 된 뒤론 연구에서 손을 떼는 학자들도 있다. 언론 보도는 그저 사실을 담았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실을 논리적으로 해석해서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전문가나 관료의 활동은 시험 합격 이후에 더 치열해야 한다. 학자에게 고용을 보장하는 이유는 생계 걱정 없이 연구하라는 것이었다. 고용 보장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모두 당연한 이야기인데, 종종 잊고 지냈다. 코로나19 사태가 다시 일깨웠다면 반가운 일이다.           


성현석  

언론인. 17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위 글은 빅이슈 7월호 2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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