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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ug 13. 2020

[칼럼] 차별하면 양반이 되는 줄 안다


글. 성현석


조선 사람은 맞아도 안 아픈 줄 알았다고 했다. 매운 음식을 많이 먹어서 신경이 무뎌진 줄 알았단다. 그래서 조선 사람은 법이 아니라 주먹으로 다스린다고 했다. 일본에 끌려온 조선 노동자들이 주로 모여 살던 오사카 동쪽 변두리 분위기가 그랬다. 이곳은 오랫동안 이카이노(猪飼野)라고 불렸다. ‘돼지를 기르는 들판’이라는 뜻이다. 공식 지명이 따로 있지만, 지금도 오사카 노인들은 ‘이카이노’라고 하면 종종 알아듣는다.



‘조선 사람도 맞으면 아프다’

거대한 빈민가였던 이곳에 일본 사람도 섞여 살았다. 아리모토 마사아키 씨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조선 사람에게 돌을 던지거나 막대기로 찌르면서 놀았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장난을 쳤다. 웃음 짓던 얼굴 위로 주먹이 날아왔다. 조선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주먹으로 맞으면, 몽둥이를 휘둘렀다. 어린 그가 어른들 이야기를 깜빡 잊었던 탓이다. 며칠 전, 어른들이 말했다. “일본이 항복했다. 조선은 이제 식민지가 아니다. 이웃 사는 조선 사람들을 전처럼 대하면 보복당한다.”


그는 정말 몰랐었다. 인종과 민족이 다르면, 감각과 감정도 다른 줄 알았단다. 그런데 아니었다. 누구나 맞으면 아프고, 굶으면 배고프다. 벌거벗으면 춥고 수치스럽다. 맞거나 괴롭힘을 당해도 마땅한 사람은 없다. 이런 깨달음이 그의 진로까지 바꿨다. 그는 훗날 대학 진학 대신 공무원 노동조합 활동가를 택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전히 차별당하는 재일 조선인과 연대하는 활동을 했다. 13년 전, 재일 조선인의 인권 옹호를 주장하는 한 행사장에서 만났던 노인의 사연이다. 어쩌다 재일 조선인의 친구가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했다. 2007년 당시 백발성성한 노인이었던 아리모토 마사아키 씨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중략)


모두가 남을 차별할 준비가 돼 있다

한국인끼리는 타고난 신분 때문에 차별받는 일이 없다. 일제강점과 전쟁이 낳은 결과다. 극심한 혼란 속에서 공동체가 파괴됐다. 폐허를 뒤덮은 도시화 물결은 어느 집 자식이 실은 백정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서 알릴 겨를 자체를 없애버렸다. 익명의 도시에선 누구도 족보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모두 양반의 후손이 됐다.


족보를 믿을 수 없는 사회이므로, 타고난 신분으로는 차별할 수 없다. 대신, 시험으로 차별한다. 우리에게 시험이란 지식을 평가하는 수단, 그 이상이다. 서로 다른 대학을 나온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취업을 앞둔 두 사람은 지능도 같고, 평생 공부에 쏟은 노력과 머리에 담긴 지식의 총량까지 같다고 하자. 한 명은 그 노력 가운데 많은 부분을 대학 입시에 쏟았다. 그래서 유명 대학에 진학했다. 다른 한 명은 그 노력 가운데 많은 부분을 대학 진학 이후에 쏟았다. 대신 유명 대학에 진학하지는 못했다. 논리적으론 뒤의 사람이 차별당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현실에선 뒤의 사람이 불리한 대우를 받을 때가 많다. 대학 입시 대신 고시, 정규직 공채 등을 넣어도 마찬가지다.



시험으로 얻은 신분과 보상 심리

(중략) 조선의 양반은 단지 양반이라는 이유로 대접받아야 했다. 양반이 위험하고 궂은일을 피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다. 양반 중에서도 문과 과거에 합격해서 벼슬을 한 문관이 특히 대우를 받았다. 문과 과거는 인문학 고전에 대한 이해 혹은 문학 재능을 평가했다. 시를 짓는 재능을 타고났다면, 아주 유리한 시험이다. 그런데 이런 재능이 행정이나 정치 실무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의학, 수학, 과학, 공학 등에 뛰어난 실력이 있는데, 유독 문학에 대해서만 재주가 약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와 반대로 문학적 재능은 탁월한데, 다른 면에선 젬병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조선 시대엔 후자가 양반 신분을 얻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전자를 차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세상에 더 많이 필요한 사람들은 전자일 텐데. (중략)



비정규직 급여가 더 높아야 정의롭다

(중략) 보상의 균형이 깨져서는 안 된다. 희생에 대한 보상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억지다. 다만 특정한 희생에 대해서만 보상한다면, 이는 잘못이다. 시험 준비하며 치른 희생에 대해선 지나친 보상을 하는데, 일하며 치른 희생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한다면, 정의롭지 않다. 지금도 하루 평균 대여섯 명이 산업재해로 죽는다. 한국은 위험한 일을 하는 이들에 대한 보상이 너무 약하다.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사무직보다 높은 급여를 주는 나라가 더 많다.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등에선 비정규직에게 더 높은 급여를 준다. 고용 불안을 감수하는 대가에 대한 보상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여러 번 나왔다. 이한 변호사는 <중간착취자의 나라>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동일한 종류의 유사한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얼마나 많이 받아야 하는가? 1배로 받는 것, 똑같이 받는 것은 부정의하다(중략)"


이와 함께 기억할 역사가 있다. 시험으로 신분 질서를 정당화했던 조선은 결국 망했다. 제국주의 물결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망해도, 정말 무력하게 망했다. 그 역시 사실이다. 양반 관료들은 나라가 망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위험도 짊어지지 않았다. 상당수 양반 관료들이 친일파가 돼 편안하게 살았다. 정당한 노력으로 시험에 붙었으므로, 그들은 위험을 피할 권리가 있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다. 민족 구성원 다수가 차별당하는 신분이 됐다. 조선 사람은 맞아도 안 아픈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성현석

언론인. 17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위 글은 빅이슈 8월호 2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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