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로컬은 무엇이니?(What’s your local?)”
“레드 라이언이야. 너는?(It’s The Red Lion, you?)”
“허스트 암즈야.(Hurst Arms.)”
남편이 우리 집 파이프를 고치러 온 배관공과 얘기를 나누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질문인지 이해가 안 됐다. 대답을 듣고 알았다. 이건 네가 가는 ‘로컬 펍(local pub)’이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술꾼들의 대화가 아닌 이상,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 단골 술집을 물어보는 것이 나는 어색했는데 그들은 날씨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했다. 이 말은 “너는 어느 동네에 사니?”라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펍은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의 줄임말이다. ‘개인 집(private house)’이 가족을 위한 사적 공간이라면, 펍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다. 대략 10세기경에 맥주(Ale)를 만드는 술도가에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이 펍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 후 ‘주막’ 비슷하게 발전해서 술과 음식, 숙소를 제공하는 곳이 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을 파는 곳은 길 떠난 나그네가 머물 수 있는 곳인가 보다. 그래서 펍 이름에 여관(inn)이 들어간 경우도 많다. 내가 사는 이스트본에는 ‘비치 헤드’라는 바닷가 절벽이 있는데, 근처에 ‘타이거 인(Tiger Inn)’이라는 오래된 펍이 있다. 영국에서 ‘오래된’이라고 말하면 정말 오래된 거다. ‘타이거 인’은 15세기부터 영업을 했다. 이스트본에서 제일 오래된 펍은 ‘더 램(The Lamb Inn)’이다. 여긴 아예 간판에 1180년이라고 적혀 있다. 아무튼 펍의 역사는 길다.
펍은 동네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어디 사냐고 물었을 때, 거리 이름은 잘 몰라도 어떤 펍 부근인지는 다들 안다. 런던 같은 대도시는 다르겠지만, 작은 도시에서 로컬 펍은 그냥 술집이 아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이고, 얘기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사랑방이자 마을 회관이다. 펍은 누구와 만날 약속을 하고 가는 곳이라기보다, 그냥 가면 누군가를 만나는 곳이다.
‘허스트 암즈’는 우리 골목 입구에 있다. 주인 애드리언은 네덜란드 사람이다. 네덜란드 사람은 계산에 밝다고 알려져 있는데 (오죽하면 ‘더치페이’란 말이 나왔겠는가), 그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동네 장사니, 나라면 단골손님에게는 가끔 인심 좋게 공짜 술도 줄 것 같은데 그는 좀처럼 그러지 않았다. 남편은, 그가 자기한테 소다수를 공짜로 준 적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생일처럼 정말 특별한 날에 베푸는 아주 드문 선심이었다. 펍의 맥주 값은 파인트(568ml) 한 잔에 4파운드(약 6천 원)쯤 한다. 제법 비싸다. 매일 오는 손님(특히 노인)이 현금을 내고 몇 잔씩 술을 사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빠르게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주는 애드리언의 손놀림이 괜히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다. 괜히 그를 야박하게 평가했던 것은 아마 첫인상 때문이었을 거다. 표정을 읽기 어려운 얼굴과 사무적인 태도는 내가 한국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요식업 종사자의 살가운 모습과는 한참 멀었다. 그에 대한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뀌었다.
여름 한철 동안, 매달 펍에서 바비큐 파티를 한다고, 남편이 아이들과 내게 함께 가자고 했다. 날이 좋아 따라나섰다. 사람이 꽤나 많았다. 뒷마당에서 애드리언은 앞치마를 두르고 양갈비와 돼지고기, 닭고기, 소시지, 소고기 패티를 대형 바비큐 그릴에 한가득 굽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일회용 접시와 포크, 햄버거빵과 채소가 준비되어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고기를 보면서 이걸 다 준비하는 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물었다. “얼마를 내야 해?” “무료야.” “진짜?” “대신 기부금을 받아.” 카운터 위에 기부금 통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기부금은 전액 우리 마을 어린이병원에 전달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접시에 음식을 담고 식구 네 명의 식사 값을 넉넉히 통에 넣었다.
야박하고 계산속이 밝은 사람이라면 굳이 이런 일을 할 리 없다. 며칠 후 펍에 갔을 때, 그간 오해한 것이 미안해서 이번에는 과하게 칭찬했다. “나 사실 감동했어. 보통은 이런 일 잘 안하잖아? 비용도 많이 들 텐데 누구나 무료로 먹을 수 있도록 하고, 또 기부금 모아 어린이병원에 전달하는 거, 참 훌륭해.”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그냥 비즈니스를 하는 거야. 펍은 지역 주민들이 와줘야 운영되는 거고, 그들에게 좋은 일을 해야 계속 찾아올 거고, 그래야 사업이 계속되는 거잖아. 커뮤니티가 강해지면, 펍도 잘 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지.” 그의 말 속에는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한다고 믿는 사람이 갖는 우월감이나 자부심이 없었다. 그래서 야박하다고 여겼던 그의 사무적인 태도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우리 집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인근에 사는 보일러 기사가 와서 수리를 해주었다. 비용을 치러야 하는데 마침 현금이 없었다. 기사가 말하기를 “그럼 돈을 펍에 맡겨두세요. 거기서 찾아갈게요.” “그래도 돼요?” “우린 자주 그렇게 해요.” 그래서 수리비를 애드리언에게 주었다. “알겠어, 전해줄게. 그 사람은 수요일에 오거든. 그때 주면 되지.” 그는 펍에서 우편물이나 택배를 받아줄 때도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건조하게 말했다. “아는 사람 물건을 받아주는 거야. 모르는 사람 것은 안 받아.”
“펍은 진짜 ‘커뮤니티 허브(community hub)’인 것 같아. 중요한 일을 하네.” 동네 네트워크의 중심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는 카운터 아래 선반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코팅까지 해서 제법 잘 간수하고 있었던 오래된 신문 기사 제목은 이랬다. ‘커뮤니티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은 학교, 교회, 그리고 펍이다.’ 맞다. 한국에서 이주해 온 우리를 반겨준 (굳이 반기지 않더라도 우리가 어딘가 속할 수 있게 해준) 곳도 딱 그 세 곳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갔고, 나는 교회에 갔고, 남편은 펍에 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록다운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 당연히 펍도 문을 닫았다. 다시 문을 연 것은 7월 4일이었다. 그날은 뭐 영국도 ‘독립기념일’쯤 되는 것처럼 축제 분위기였다. 펍이 다시 문을 연다는 것은 일상이 돌아온다는 의미 같았다. 그런데 너무 일찍 잔치를 벌였다. 그 후 속수무책으로 감염이 확산되자 11월에 다시 록다운에 들어갔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3월부터 서서히 규제가 풀리고 있다. 마침내 4월 16일에 펍도 문을 열었다! 아직은 야외 탁자에 앉는 것만 허용되지만, 이제 긴 겨울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으니, 밖에 있는 것도 괜찮다.
지난 주말에 펍에 갔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반가울 법도 한데, 애드리언은 별 인사도 없이 기계적으로 주문을 받았다. 이제 그러려니 한다. 기네스 파인트 한 잔을 들고 앞마당으로 갔다. 이미 자리가 꽉 찼다. 아는 얼굴이 여럿 보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백신은 맞았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었는지, 서로 안부를 물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 그들은 이런 로컬이 특별히 절실했겠다. 하늘이 맑았다.
글/ 사진. 이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