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회화 시간에 단골로 나오는 질문이 있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___는(은) 무엇이니? (What’s your favorite ___?)” 빈 칸에 들어갈 말은 많다. 색깔, 음식, 과목, 책, 영화 기타 등등. 이 질문은 묻기는 쉽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때마다 다르기도 하고, 꼭 하나를 말할 수 있을 만큼 취향이 분명하지도 않다. 그냥 뭐든지 웬만하면 다 괜찮다. 그래도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있으니, 그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물을 때이다. 나는 언제나 가을이 좋았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바람이 실어 오는 냄새가 좋고, 깊은 가을의 비스듬한 햇살이 좋았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다.
4월에 고추 모종을 심었다. 그때는 꽃을 보려는 마음이 컸다. 도시에서 자라서 꽃이라고는 과한 포장재를 두른 장미, 백합, 안개꽃이나 봄에 개나리, 진달래, 철쭉 그리고 가을에는 국화밖에 몰랐던 내가 새삼 알게 된 것은 내가 먹은 모든 열매들이 한때 다 꽃이었다는 것이다. 그 꽃들은 하나같이 다 근사했다. 사과, 복숭아, 배는 물론이고, 오이, 가지, 콩, 배추, 고추 꽃도 예뻤다. 그중 콩꽃(sweet peas)은 정말이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치 모시 한복에 자수를 놓으면 어울릴 것 같은 하늘거리는 꽃잎과 파스텔 톤의 빛깔도 그렇지만 그 향이 단연 압권이다. 은은하고 섬세해서 향수로도 많이 쓰인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콩도 심었었다.)
봄에 심은 고추는 키가 쑥쑥 크다가 6월 어느 날 희고 단아한 꽃을 피웠다. 자랑하지 않고 가만히 피었다가 조용히 지고 꽃받침 아래에 물방울만 한 초록 열매를 남겼다. 그 작은 열매는 여름 내내 길어지더니 가을 문턱에 다다랐을 때 제법 듬직해졌다. 신기해서 따 먹으니 진짜 풋고추 맛이 났다. 한 달쯤 지나 싱싱한 초록색은 가을 햇살을 잔뜩 받고 빨갛게 익었다. 빨간 캡슐 안에 햇볕과 시간을 담아둔 것 같다. 꽃만 봐도 좋겠다고 심었는데 과분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봄꽃이 주는 즐거움과 가을 열매가 주는 기쁨은 다르다.
꽃피고 열매 맺은 과정을 다 보고 나니, 빨갛게 여문 고추를 따기가 조심스럽다. 따고 나면 끝인 것 같다. 아무래도 일단 김치를 담가야겠다. 생고추를 양념과 함께 갈아 넣으면 고춧가루만 넣은 것보다 김치가 청량해진다. 마당에서 딴 고추는 김치에 넣어야겠다. 그렇게 하면 겨울까지 같이 있을 수 있겠다.
주말 농장을 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주변 사람이 덕을 많이 본다. 분양 받은 땅을 부지런히 일구면 보통 여러 가족에게 나눠 줄 만큼 수확한다. 한국에서는 주말 농장을 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나는 그런 나눔의 수혜자가 되어본 적이 없었다.
톰은 내 친구의 친구이다. 그의 분양지(allotment)에서 거둔 감자, 오이, 토마토, 가지, 호박이 우리 차례까지 온 것은 내 친구 미나가 징검다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맛이 달랐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파는 야채에서는 도대체 무엇이 빠져나가는 것일까? 그게 무엇인진 몰라도 톰이 수확한 작물 안에는 그게 있었다. 아껴 먹으려 했는데, 한 광주리 받은 야채는 금방 사라지고 단호박 세 개만 남았다. 단호박은 일찌감치 볕 잘 드는 창가에 놓아두었다. 정겹게 두고 보다가 늙은호박이 되면 죽도 끓이고 호박범벅도 만들 참이었다. 그러려면 여름이 다 가고 가을도 깊어져야 한다. 할로윈쯤이나 돼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기다리면 천천히 오는데 무심하면 훌쩍 지난다. 단호박 껍질이 짙은 녹색에서 밝은 주황빛으로 바뀌는 데는 100일밖에 안
걸렸다. 창가에 비치는 해도 이제 제법 낮아졌다.
계절이 바뀌니 아픈 사람이 많다. 나도 감기에 걸렸다. 몸져누운 것은 몇 년 만이다. 그동안 아픈 남편을 돌봤는데, 그가 나를 돌보니, 아픈 사람 심정을 알겠다. 상대에게 미안하고 고마운데, 이것저것 자꾸 물어보니 귀찮기도 하다. 날 좀 도와달라는 마음과 날 좀 내버려두라는 마음이 동시에 일어났다. 이 마음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나는 그 타이밍을 잘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배가 고팠다. 어제 저녁에 남은 음식을 챙겨 먹으려다가 죽을 끓이고 싶어졌다. 창가에 장식처럼 놓인 호박을 하나 집어 들었다. 칼로 쪼개니 노랗게 잘 익었다. 팥과 찹쌀가루를 넣어서 호박죽을 끓였다. 한 사발 담아서 볕 잘 드는 곳에 앉아 먹었다. 엄마가 끓여준 것과 모양은 비슷한데 맛이 다르다. 뭔가 부족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엄마는 무엇을 더 넣었을까?
어릴 때 엄마는 나를 도토리라고 불렀다. 그때는 그게 싫었다. 나는 셋째 딸이다. 그 말인즉, 남아선호가 공공연했던 1960년대에, 그리 환영받고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내 밑으로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그걸 야구의 ‘스트라이크’라고 부르며 기뻐했다. (만약 네 번째도 딸이었으면 우리 자매들은 포볼(four ball)로 불릴 판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가 왠지 어쩌다가 태어난 ‘잉여’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 것이라고는 별로 가져본 적이 없고 물려받은 옷과 물건만 쓰다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그래서 엄마가 나를 도토리라고 부를 때, 괜히 흔하고 하찮은 존재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을 산에 널린 것이 도토리요, 시장통에서 헐값에 팔리는 게 도토리묵이었다.
우리 집 근처 햄던 파크에는 떡갈나무 숲이 있다. 지난번에 산책을 하며 보니,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가 제법 널려 있었다. 부지런한 다람쥐들도 다 나르지 못했나 보다. 한국에서 살 때 우리 동네 수리산에는 ‘다람쥐들의 겨울 양식을 가져가지 말아달라.’는 현수막에 걸려 있었다. 여기는 그런 안내문이 없다. 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다. 도토리를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다. 몇 개를 집어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 검색창에 ‘도토리묵 만들기’를 넣어 찾아보니 이건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도토리를 그릇에 담아 창가에 놓아두었다. 동그란 놈들이 야무지고 단단한 것이 제법 귀엽다. 그 옛날, 엄마 눈에도 내가 그렇게 보였던 것일까?
“당신은 가을 하면 뭐가 생각나?” 남편에게 물었다. “나는 색이 떠올라. 레드, 오렌지, 옐로우가 온 천지에 가득하지. 그런 가을은 한국에서 살면서 처음 본 것 같아. 한국에 살 때 가을이 좋아졌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야.” 그의 말을 듣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뭔지 분명해졌다. 나는 ‘한국의 가을’을 제일 좋아한다. 그 불타는 색… 나는 겨우 빨간 고추 몇 개와 잘 익은 늙은 호박과 한 줌의 도토리를 앞에 두고 그 흔적을 찾고 있다.
글 | 사진. 이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