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왠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 한 겹을 덧입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낯선 풍경과 언어, 음식, 사람들을 접하며 받는 신선함과 때로는 강렬하기까지 한 충격이 좋아서, 여유가 되는 대로 여행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시대 2년, 이동의 자유가 이토록 쉽게 박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으며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내가 그간 누려왔던 자유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음을 실감하며 아쉬운 마음 안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미끄러지듯이 비행하는 이름 모를 새를 바라보며, 양 날개로 하늘을 나는 그대들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내 새들 또한 하늘을 자유롭게 날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동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 한 편이 불편해지고 맙니다. 녹색연합에서 활동하며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그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새가 하늘을 난다’는, 당연한 명제처럼 여겨지던 그들의 자유를요.
도시를 가득 메운 높은 건물들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눈여겨본 적 있으신가요?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도로가에 설치된 방음벽을 보신 적은요? 눈썰미가 있는 분이시라면 ‘유리’로 지은 건물과 방음벽이 참 많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최근에 지어진 건축물이라면 높은 확률로 유리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깔끔하고 탁 트인 느낌을 주어 미관상 좋다는 이유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건물을 지을 때 유리를 쓰는 사례가 느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그 유리가 새들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위협한다면 어떠신가요? 그들의 목숨을 빼앗으면서까지 아름다움을 추구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을 것입니다.
반짝반짝 투명해서 아름다운 유리. 그 유리가 왜 새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걸까요? 바로 ‘투명’하기 때문입니다. 깨끗이 닦아놓은 유리문은 건물 안과 밖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뚫려 있는 듯한 효과를 줍니다. 건물 안에 있으면서도 바깥을 내다보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반영하여 누군가가 그 옛날 유리문과 유리창을 발명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뻥 뚫려 있는 것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사실은 안과 밖이 유리로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학습하여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보이는 대로, 이곳과 저 너머가 이어져 있습니다. 그 사이를 가로막는 유리창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시속 36~72km의 빠른 속도로 날던 그들은 유리에 그대로 부딪히고, 달걀 껍데기와 비슷한 강도의 두개골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해 십중팔구 죽고 맙니다. 이렇게 무참히 죽는 새가 1년에 무려 800만 마리, 하루에 2만 마리(환경부 통계)나 됩니다. 사람이 대략 2초에 한 번 눈을 깜빡인다고 하니, 우리가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새 한 마리가 죽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이, 자연에 함께 깃들어 살아가는 새에 대한 우리의 낮은 이해와 배려가, 의도치는 않았지만 새의 짧은 삶을 더 단축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인간의 미적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새의 자유를 보장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새들이 비행을 시도하지 않는 ‘5x10cm 간격’을 두고 점 스티커를 붙이는 것입니다. 이미 지어진 건물에는 스티커를 붙여서, 새로 건물을 지을 때는 패턴이 적용된 유리를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녹색연합이 2019년부터 새 유리창 충돌 문제에 대한 교육, 모니터링과 더불어 충돌 방지 스티커 부착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동안 여러 현장을 찾아 캠페인을 벌였고, 특히 철새 도래지인 천수만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충남 서산시 649번 지방도에는 매년 봄, 가을마다 찾아가 방음벽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올여름 7~8월에 약 110마리의 새 사체가 발견되었던 한 구간에서는, 스티커 부착 이후 현재까지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꾸준히 캠페인을 이어오며 소통하니 도로 관리 주체와 지자체의 인식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산 649번 지방도의 관리 주체인 충남 종합건설사업소가 새 충돌 저감 방안 예산을 편성했고, 향후 자체적으로 방음벽에 스티커를 붙이겠다고 한 것입니다. 효과 없는 맹금류 스티커를 방음벽에 붙이던 지자체들도 하나둘씩 조류 충돌 방지 조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도로가 개설되고 건물이 지어질 때마다 유리창에 스티커를 붙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유리창 새 충돌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새로 짓는 건물 한 채, 한 채에 새를 배려하는 마음을 먼저 녹여내게 될 것입니다. 새에게는 삶 그 자체일 ‘이동의 자유’를, 더는 우리가 빼앗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없으니까요.
글. 유새미 | 사진제공. 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