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밭골샌님 Mar 19. 2024

골목길 야생화 8 회양목

작지만 딴딴한, 흔하지만 잘 안 보이는ᆢ


회양목


요즘의 아파트 화단이나 골목길 자투리땅은 봄맞이를 위한 부산함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새싹만으로는 아직 정체를 분간하기 어려운 풀들이 루가 다르게 솟아나있는데요.
그 자리에서 방석처럼 좍 퍼져 겨울을 난 놈들은  터줏대감 티를 내고 있습니다.
냉이, 민들레, 뽀리뱅이, 애기똥풀, 지칭개 등이 그러하죠.


잎을 방석 모양으로 땅바닥에 붙인 채 겨울을 나는 것들을 로제트형 식물이라고 '서양민들레'편에서 말씀드렸지요?
이렇게 겨울을 나는 잎은 양분이 많아 다른 어느 때 것보다 더 맛있답니다. 겨울 시금치가 맛있는 이유라네요.

오늘의 주인공은 그런 땅바닥에선 조금 벗어난, 풀이 아닌  나무, 회양목입니다.

너무 흔해서 오히려 잘 안 보이는 친구죠.


경계를 구분하는 용도로 심은 회양목. 평평하게 혹은 둥그렇게 머리를 깎여 본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관리가 잘 된 화단 둘레에 항상 평평하게 싹둑, 혹은 둥그렇고 정갈하게 머리를 깎인 채 앉아있는 키 작은 나무, 회양목.
원래는 석회암지대에서 잘 자라는데요. 다듬기도 쉽고 사계절 푸르러 관상수로 사랑받습니다.

들어가지 말라는 표시로 잔디밭 가장자리에 한 줄로 심어 생울타리로 삼거나, 학교나 관청의 본관에 이르는 길 양옆에 심어 그 길이 통로임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도심 속에서만 보이니 중국 등 외국에서 온 것이리라 여겨지지만, 엄연히 우리나라 산에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랍니다.

우리 동네 공원의 회양목 꽃. 은은한 향기가 일품이다.


이들은 꽃샘추위가 매서울 때부터 황금빛 꽃을 피웠고, 지금도 가지마다 꽃을 달고 있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
근처에 가면 은은한 향기가 코를 자극하는데요.

주변 사람들 의식하지 말고 직접 냄새를 맡아보시길 권합니다. 기분 좋은 달콤한 향이거든요.


황양목(黃楊木)이라고도 하는데요.
북한 쪽의 강원도 회양(淮陽)에서 많이 자라, 회양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네요.
늘푸른떨기나무(상록관목).


■ 잠깐요, 상록관목?

상록은 항상 푸른 나무라는 건 아시죠? 겨울에도 푸른 쪽에 가깝습니다. 우리말로는 늘 푸른.

상록수의 반대쯤 되는 건 잎이 지는 낙엽수.

상록수는 침엽수인 소나무처럼 잎이 바늘 모양인 나무가 많지요. 반대로 잎이 넓으면 활엽수인데요, 그중에 상록수도 많답니다.


물 댈 관 자를 쓰는 관목(灌木)은 줄기와 가지가 뚜렷한 보통의 나무와는 달리, 대부분 땅에서부터 가지가 많이 나오는 나무를 말해요. 우리 말로 떨기나무.

개나리나 박태기나무가 대표적입니다. 키는 3m 내외.

관목의 반대는 높을 교 자를 쓰는 교목(喬木) 입니다. 8m 이상은 교목(큰키나무),그 미만은 소교목(작은키나무)입니다.


관목은 땅에서부터 줄기가 갈라져 나온다. 사진=들꽃사랑연구회

샛길로 가던 길 되돌아와서,
회양목은 성장 속도가 매우 느려요.

수백년을 자라도 줄기 지름이 25cm 정도.
키는 2~3m까지 자란답니다.
전지가위로 잘라 는 것을 막아서 그렇지, 자연 상태에선 진짜 땅꼬마는 아닌 거죠.

경기도 화성 용주사에는 이례적으로 키가 5m가 넘는 회양목이 있는데요.
정조대왕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져 수령 300년 이상으로 보고 있답니다. 국내에서 가장 굵고 큰 나무로 1979년 천연기념물 제264호로 지정되었어요.
'매실나무'편에서 언급한 퇴계 이황 선생이 살았던 도산서원에도 2m 정도의 회양목이 있답니다.

작은 가지는 녹색이고 네모지며 털이 있습니다.
잎은 마주 달리고 타원형. 잎이 두꺼워요. 앞면은 광택이 있고, 뒷면은 황록색.


 꽃가루가 있는 수꽃은 주변에 위치하고, 세 갈래로 갈라진 암꽃은 한가운데에 반투명한 상태로 있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습니다.

이른 봄에 노란색에 녹색이 어렴풋이 섞인 연노란색으로 핍니다.

꿀이 많은 식물을 밀원식물이라고 해요.

이른 봄 추운 시기에 이제 막 나온 벌들에게 귀중한 식량을 대주는 밀원식물이 바로 회양목.


열매는 6∼7월부터 갈색으로 익어요.

타원형 끝에 암술머리가 뿔처럼 돋아난 특이한 모양을 합니다.

다 익으면 정확히 3등분으로 갈라져서, 부엉이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띠는데요.

그 안에 까맣고 반질반질한 씨앗이 콕콕 박혀 있죠.

가을철 회양목 덤불엔 유난히 참새들이 많습니다.

다 익은 열매는 세 갈래로 갈라진다. 반질반질한 검은색 씨앗이 양쪽으로 있어 부엉이처럼 보인다.

회양목은 목질이 단단하고 균일해 목재로는 최상급으로 사랑받았어요.

대부분의 나무는 물을 운반하는 물관 세포가 크고 나무를 지탱해 주는 섬유세포는 작은데요.

회양목은 물관과 섬유세포의 지름이 거의 같은 유일한 나무랍니다.

특히 물관이 나이테 전체에 걸쳐 고루 분포해 나무질이 곱고 균일하답니다.


치밀하고 단단해가공하기는 쉽대요. 주로 도장을 만드는 데 쓰여, '도장나무'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요.

바둑알이나 현악기의 받침대처럼 예민한 재료로도 쓰이고요.

회양목으로 만든 얼레빗은 여자들에게 최고의 빗으로 꼽혔습니다.


조선시대에 16세 이상의 남자는 호패를 차고 다녀야 했습니다. 오늘날 주민등록증 역할을 하는 이 호패의 재료 바로 회양목이었답니다.

양반들은 상아처럼 고급 재료를 썼고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 여성들 사이에 회양목 얼레빗이 대유행을 했답니다.

당연히 품귀가 되었겠죠. 호패 재료가 부족한 사태에 이릅니다.

워낙 더디게 자라는 나무이니만큼 호패 제작에도 모자라는 건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요.

결국 회양목을 호패 이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걸 금지하고, 관에 공물로 바치게 하는 제도가 생겼답니다.


오늘날 오래된 회양목이 거의 없는 것은 이런 품귀 사태와 공물제도 때문일 것이라고 <우리 나무 백가지>의 저자인 이유미 박사는 추정합니다.


한방에서는 진해, 진통, 거풍 등에 약재로 쓴답니다.


요란하지도 현란하지도 않은 키 작은 나무.

꽃조차 있는 듯 없는 듯한 나무.

속은 단단하다 못해 딴딴한 회양목.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 이른 봄부터 꽃을 피워 꿀벌 같은 뭇 생명을 살리고 있을까요?


■ 오늘은 생물학 또는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 시간이 되었어요.

인생은 늘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면, 골목길도 또한 항상 아기자기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생물학 시간이다 보니, 언급하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네요.

이명구라는 조선말 유학자가 있었습니다.

난세에 세상을 떠나 숨어 살기로 작정하고는, 자신이 머물기로 한 곳을 직접 건축하고 회양목을 심었는데요.

이 나무로부터 <중용>이라는 책의 주제인 '성실'을  본받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인문학자 강판권 님의 <선비가 사랑한 나무>에서 발견한 사실입니다.


이토록 짧은 글이지만, 보이지 않게 많은 분들에게 빚지고 있답니다.

직접 자연을 보고, 듣고, 읽는 행위에는 우리가 지 못할 비밀이 숨어 있다는 걸 여러 저자의 글을 통해 새삼 깨닫습니다.


2024년 3월 19일

작가의 이전글 골목길 야생화 7 산수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