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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망생 성실장 Jan 18. 2017

오늘 죽으면, 낳지 못한 글들이 아까울 것 같다.

지난달, 12월 28일이었다.


가족들이 잠든 밤. 나는 혼자 맥주를 마시며 블로그에 로그인을 했다.


"다시 쓰자"


라고, 적었다.



나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과 특성상, 예술가병에 걸린 친구들이 많았고, 나 역시 예술병에 걸려 있었다. 예술병에 걸린 우리들은 낭만을 찾으며 매일 낮술 먹으면서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오글거리는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었다.

수많은 사랑이니, 인생이니 되지도 않는 이야기들 중에  딱 하나 지금도 기억나는 대화, 말이 있다.


"나는 오늘 죽으면, 쓰지 못하고 내 머리에 담겨만 있는 글들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아" 


라는 말이었다.


누가 한 말이었는지는 모르고, 그 친구가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나는 그 말을 생각하곤 했다.


나는 엄청나게 작가가 되고 싶지만, 사실 그 열망은 그냥 죽기 전에 에르메스 백을 한 번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라던지 죽기 전에 크루즈 여행을 한 번 하고 싶다 정도의 사치 부리고 싶은 리스트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딱히 성실하게 글쓰기를 해오지도 않았고, 죽으면 땡인데 뭐가 아깝고 억울하냐, 그 작품이 얼마나 좋을지 알고 본인이 천재인 줄 아나.라는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했었다.


그런데 내 나이 38이 되고 보니, 이제야 나는 좀 억울해진 것 같다.


이대로 죽으면 억울할 것 같고, 아까울 것 같다.


왜냐면 내 자식들에게 남겨줄 유산이 그것 밖엔 없으니까.


나는 현재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 물론 아직 젊으니까 20년, 30년 뒤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빚밖에는 물려줄 것이 없다.

그나마 글을 쓴다면,  좋아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남기긴 했으니까  부모로서 체면치레는 되지 않을까?


그리고 소설을 떠나서, 엄마는 뭔가 하는 사람이다. 요즘처럼 사람 값이 제일 싼 시대에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는 시대에 엄마는 발버둥이라도 치며 살았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래서 나는 38살,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큰 맘을 먹고 새해를 맞이했다. 벌써 보름이 지났다. 일주일에 하나는 쓰기로 했는데. 이제야 첫 글을 쓴다.


역시 애 둘 엄마, 투잡을 하고 있는, 나에게 가외 시간을 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진짜 사치이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라 말할 만큼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근데, 그래도 매일 좀 기분은 좋아졌다. 무엇을 쓸 것인가 생각하는 것은 역시 내일 저녁은 뭐 하지? 보다는 즐거운 고민이니까.


이제 나는 '오늘 죽으면 낳지 못한 나의 소설이 아까워 눈을 못 감을 것 같은' 진짜 소설가 지망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쓸지는 모르겠지만 ^^ 

일단 오늘은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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