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노동을 알고부터 화장을 안한다

by 지망생 성실장

나는 원래 화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화장을 해봤자

몇시간만 지나면 코나 입 주위에 화장이 지워져서

얼굴이 얼룩덜룩 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때는 화장을 제법하고 다니긴 했겠지만

그때도 수정화장을 절대 안했기 때문에

저녁때가 되면 화장이 거의 지워져 있곤 했었다.


그래도 어렸으니까 자체적으로 빛났으니까 이뻤겠지


그러다 애를 낳고는 절대 화장을 안하기 시작했다. 애한테 화장품이 묻는 것도 싫었고,

애들이 화장 안한 엄마가 익숙하다보니

화장을 하면 울어버렸기 때문이다.

큰애 돌잔치때는 하루 종일!!! 엄마가 아니라며 울어서 돌잔치 사진이 죄다 엉망일 정도였다.

( 근데 그날 화장이 내 인생 최고로 이뻤다 )


그냥 애엄마가 되고 전업주부도 했다가. 회사를 나갈때도 어차피 콜센터고 하니 화장을 안하고 다니게 되고, 자연스럽게 로션조차 안 바르고 다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꾸밈노동" 이란 단어를 알게되었다.

여자만 꾸밈노동을 강요받는 다는 말이다.


가만히 생각하보면 여자만 꾸밈노동을 강요받는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남자들도 드라이도 하고 왁스도 바르고, 로션도 바르고

깔끔하게 옷 입고, 사회적으로 외모에 대해서 다 신경을 쓰니까.


하지만 여자에게는 화장이란 단계가 추가되고, 화장을 안하면 매우 실례라는 말까지 듣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긴 들었다.


어차피 화장을 안하고 살지만

꾸밈노동 이란 단어를 알고 나서는 더 당당하게 맨얼굴로 다녔다.


그런데 남편이 복병이다.

남편이 제발 화장을 하고 다녔으면 하고 바란다.

톤업크림 하나만 발라줘도 좋다고 박수를 친다,

내 눈에는 허옇고 뜬 화장이 너무 웃긴데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한달 정도 매일 맨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다녔다.

원래 베이스메이크업, 파운데이션, 파우더, 눈썹, 아이새도, 볼터치, 립스틱

이게 자연스런 순서인데


남편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해서 맨 얼굴에 파운데이션 하나만 발라본것이다.

그런데 진심으로 너무나 고마워하고 이뻐하고 좋아한다

나는 너무 안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봐주는 유일한 사람이 이렇게 좋아해주니 나도 하게 된다.


그렇게 한달 가량 하다가

어제 오늘 진짜 늦잠을 자서 화장을 안했더니

또 시무룩 해진다.



꾸밈노동을 반대하는 페미니스트인 나와

남편을 사랑하기로 노력해야 하는 아내인 나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진짜 여러가지로 사업적으로 힘든 시기의 남편이 조금이라도 힘낼 수 있다면

그까이꺼 화장을 해주는 것이 맞는데

정신병적으로 잠이 많아진 요즘에 일찍 일어나 로션하나 바르는 것도 쉽지 않은 체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꾸밈노동을 반대하는 페미니스트인 걸


그런데... 오늘 유달리 시무룩해진 남편을 보니

아마 선크림이라도 파운데이션 하나라도 바르고 다니게 될 것 같다.


남편이 불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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