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왜?

by 지망생 성실장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부부싸움을 하던 중

남편이

"너 페미니스트냐?"

라고 말을 했었다. 벌써 17년 전,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언급되기 전이었다.

"당연하지! 흑인 중에 흑인인권운동가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 페미니즘이 있었으니 나도 대학을 다닐 수 있었지.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닌 여자 중에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 있는 여자가 있다고 생각해?"

라고 대답을 했었다.


모든 소수민족은 소수민족의 권리를 위해 인종차별주의자를 비판하고, 평등을 요구한다.

모든 장애인은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장애인 인권운동을 한다.

당연히 모든 여자들도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다.

여자들의 권리는 여자들이 지켜야 하니까.

그리고 오랜 역사 속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운동을 해 왔기에

여자들도 글을 읽고, 학교를 다니고,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비혼과 출산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내 생각이 요즘 혼돈스러워지고 있다.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순간

매갈이니 뭐니 하면서 무슨 극우주의자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여자들 스스로가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하면서 선을 긋기도 한다.


요상한 세상이다.

여자들에게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물어봐주는 것부터가

페미니즘의 성과인 것을 생각할 때,

여자들 스스로가 "난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을 텐데.


80년대, 90년대 앞서가고자 했던 남성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진짜로 여성인권이 높아가니 "여기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네, 귀엽게 봐주려고 했는데 너무하잖아." 하면서, 몇 년 전부터 페미니스트들을 깔아뭉개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겁먹은 여성들이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하는 말까지 하게 된 것 같다.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기혼녀도 페미니스트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도 안다.

나는 그들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결혼을 한 순간, 여성은 본인의 여성 인권보다,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는 남편의 권리를 더 옹호하거나, 혹은 아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기 위해, 오히려 남성의 권리를 지지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기혼녀이자 페미니스트인 내 입장에서도 충분히 맞는 논리적 사고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진짜 페미니스트들은 비혼이 맞다고도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내가 페미니즘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도 생각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적어도 딸 둘을 둔 엄마 입장에서,

나는 내 딸들이 비혼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준 지금의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기혼녀이지만 적어도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배우자를 선택해서 결혼할 수 있게 해 준

페미니즘의 성공에 감사하다.


그리고 아직도 여성 인권이 남성 인권과 동등해지기 위해서는 갈길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서 '엄마' 만이 해낼 수밖에 없는 신체구조와

신체구조에서 비롯된 사회적 경계가 있는 동안은

페미니즘은 멈출 수 없고, 멈춰도 안된다.


내 딸들이 당당하게 "나는 여자니까 당연히 페미니스트야"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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