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슴에 품고 있는 직업 리스트가 있다.
"이 일은 할 수 있겠지"라는 직업이다.
그 일을 무시하거나, 하찮게 보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정말 너무 힘들기 때문에 감히 지금은 도전을 못하는 일이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만약 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 정말 먹고 살기 힘들어져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직업을 선택해야 할 때, 그때 도전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품고 있는 예비 직업은
학벌이 상관없는, 나이도 잘 안 보는 진입장벽이 낮은 일이어야 한다.
영업에 대한 부담이 좀 적어야 하고, 나는 체력이 약하니까 너무 많은 체력을 요하면 안 된다.
고등학생 때부터 가장 오래 생각했던 직업은 장례지도사이다. 보험회사에서 모집하는 장례지도사가 아니라, 실제로 "염"을 하는 장례지도사 말이다. 그런 직업이 있다는 것을 고3 때 신문에서 보고, 여자 장의사가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
그리고 대학생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엄마가 '남자 장의사가 염을 하는 것이 보기 힘들었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여자 장의사가 되어, 여성 고인을 전문적으로 '염'을 할 수 있다면, 의미도 있고 먹고 사는 것은 지장 없겠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5-6년 전에, 너무 많은 장례지도사가 생겨서 이 일도 영업을 제대로 안 하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 후, 게다가 이미 내 나이에는 도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조용히 내 마음속 직업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그다음은 청소일이다.
체력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사지 멀쩡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청소 아니겠는가.
사실 전재산 사기 당하고 힘들 때 집 앞에 2001 아웃렛 청소나 카운터 일을 하고 싶어서 알아봤는데. 딱히 잡코리아 등에 공채도 안 나와서 이리저리 서치 해보니, 인맥 없으면 들어가기 어렵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지하에 식품관 카운터 직원 분은 어쩌다 애 낳고 나서 애들을 예쁘게 봐주셔서 간단한 인사정도 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분도 거진 10년을 근속하신 분이셨다.
아마 나름 대기업(?)에서 직접 고용하는 청소나 카운터 일은 근로 안정성이 높아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아... 청소 일도 쉽지 않겠구나 싶어 조용히 가슴속 명단에서 청소일을 빼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지하철 청소일이 생각났다.
사실, 친정 이모 두 분과 외숙모가 지하철 청소일을 하고 계시다. 나름 공공 기관 일이기 때문에 정년도 보장되고, 휴무일도 정해져 있다. 급여는 많지 않지만 워라밸과 급여 안정성에는 최고 일이다. 그래서 꽤 연세가 많으셔도 일을 하고 계시고 매우 만족스럽게 다니신다.
그러니 나도! 인맥이 있는 것이다. 적어도 어떻게 그 일에 이력서를 넣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실 것이다.
물론, 이모님들께 내가 청소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을 하는 것이 친정 부모님을 생각하면 쉽지 않겠지만, 내가 당장 돈 오십만 원이 급한데 체면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쯤 둘째 이모가 연세가 되셔서 청소 일에서 정년퇴직을 하기로 결정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이거 정말 기회다!
나는 부모님께, 이모님이 그만두시면, 그 자리에 내가 가면 어떻겠냐고 말씀을 드렸다. 이력서 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아... 그때의 엄마와 아빠의 표정은 정말이지 죄송했다.
나는, 불안정한 생활이 너무 싫다.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는 것도 내 건강에 좋을 것이다. 정년까지 보장되는데 너무 하고 싶다고 주절거렸지만.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엄마 아빠를 보고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당시 학원을 막 시작했을 때라 시기도 안 좋긴 했다. 그래서 일단은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이모 한분과 외숙모가 일을 하고 계시다. 아직은 인맥이 살아있다. 그래서 마음속 리스트에 아직은 품고 있는 소중한 직업으로 남아있다.
세 번째는 자동차 실내 청소일이다.
역시 청소일인데, 이건 남편과 둘이 하면 좋을 것 같다.
내 블로그 실력과 전화 영업실력, 남편의 꼼꼼함을 장점으로
차에 장비 실고 다니면서, 출장 실내청소를 해주는 것이다.
둘이 사이좋게 일하면서, 일정 조절하면서, 드라이브한다 생각하고 전국 방방 곡곡 다니면
즐겁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말 그대로 무점포, 소자본 창업이고, 성실하기만 하면, 굶어 죽지는 않을 듯?
그런데 너무 늙으면 고객님이 싫어할까?
네 번째는 카카오티 배달
이건 남편이 이미 은퇴 후에 하기로 결정한 직업 같다.
앱 열어놓고, 드라이브 가고 싶은 곳에 배달이 있으면, 픽업해서 가져다주고, 간 김에 놀고 오자고.
운전을 좋아하니까
65세부터 75세 정도에 소소하게 용돈 벌기 좋겠다고 한다.
물론, 이 일을 업으로 밥벌이로 하면 매우 치열하고 위험하겠지만
정말 용돈벌이만 생각한다면
남편 생각이 나쁘지 않아서, 내 리스트에 넣어주었다.
다섯 번째는 심리테스트 카페창업이다.
이건 창업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사실 거의 가능성이 없다. 인생에 마지막 밥벌이로 선택하기에 창업 비용이 많이 드는 "월세"가 나가는 것은 적합하지는 않다.
하지만, 리스크를 안은 만큼, 돈은 더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지막 직업 리스트에서 삭제를 못하겠다.
소싯적에 타로카드를 했었다. 유럽 배낭여행에서 타로카드로 종종 밥을 얻어먹었고, 나름 단골(?)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내가 사기꾼 같아서 오래 하지는 않고, 그냥 접었던 분야이다.
그런 심리테스트는 좀 과학적(?)이니까, 덜 사기꾼이라고 생각이 든다.
재미 삼아 심리테스트, MBTP 같은 거 하다가 곁다리로 타로도 좀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라면
분위기 좋고, 커피와 빵도 기본만 하면,
그냥 커피숍보다는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주기적으로 나불대야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니까
나에게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것 역시 너무 늙으면, 손님들이 구려지니까. 점차 리스트에서 멀어지고 있다.
너무 장사가 안되니까.
가슴속에 품은 '이거는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직업 리스트가 자꾸 생각난다.
아마 이 중에 가장 현실적인 일은
이모가 하고 계신 지하철 청소 일일 것이다.
이모가 어떻게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는지 알려만 준다면 나는 할 것이다.
물론 그 일을 하게 되면 다시 인천으로 이사 가야 하고, 내 가족들은 둘째 문제고, 부모님이... 아무래도 엄마 아빠는 속상해하겠지만.
먹고 살 수 있다면, 불안함이 줄어든다면, 나는 정말이기 기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온 가족이 원하는 것은
어쨌든
지금 장사가 잘 되는 것이다.
배운 것을 바탕으로 먹고 사는 것이, 인풋 대비 좋은 아웃풋이니까.
다시 가슴속에 리스트를 접어 둔다.
출근해서 일을 하자
일단 하던 일을 하는 데까지 해보고
몇 번이고 했던 일을 또 해보고, 그때 다시 리스트를 꺼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