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혼을 못하는 나는, 남미새 인가?

by 지망생 성실장

남미새 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남자 못 잃는 여자를 뜻하는 말이라는데, 뭐든 과하면 문제가 되는 것도 있고,

기존의 남자 선호 사상이 뿌리깊은 나라에서 사상을 개척하기 위해 필요한 단어라고 생각이 든다.


아마 내가 남자 아이를 낳았다면, 나도 남미새가, 아니 그냥 평범한 남미새가 아니라 엄청 나대는 남미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낳고 보니, 자식을 위해 사는 것이 부모의 전부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들을 또는 아들만 낳았다면, 당연히 남미새가 되지 않았을까?

기득권자인 남자로 자식을 탄생시켰다면, 그 기극권을 지켜주고 싶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너무나 다행히 나는 딸만 둘을 낳았다.

나는 구시대에 살았고, 깨어나지 못했고,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무지랭이였기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았었다.

하지만 딸을 낳고, 인터넷을 통해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고, 내 딸은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를 하기를 원한다. 물론 비연애나 비섹스는 이루기 어려울 것이지만(그것이 동성애든 이성애든...) 비혼과 비출산은 정말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다.

딸들이 남미새가 되지 않고, 여성으로서 여성의 나의 두발로 서서 세상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 나름 세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이런 내 맘도 모르고, 딸들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페미니스트는 별루야. 물론 여성 인권은 중요하지만.' 이런 개똥같은 말을 해서.. 요즘 세상이 어떻게 되고 있는가 한탄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남미새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남미새를 풍자하는 유머를 볼 때마다, 남일 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그저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던 탈혼을 하지 않고,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남미새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직장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만약 직장내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과 내 남편을 두고 응원하라면 당연히 내 가족인 남편일테니.

남편의 남자로서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내 가정에 더 이득이 된다면, 나는 그것을 지지할테니 말이다.

안타깝지만...


심지어 나는, 경제적으로도 남편에게 살짝 기대고 있는 상황이고, 가사노동도 내가 더 많이 하고 있으니....

진짜 남미새가 아니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 맞는 것 같다.


(사실 어제 무시무시하게 부부싸움을 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결혼의 단점과, 내 결혼생활의 불행함과, 내 남편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려면 정말 밤을 새도 부족할 판이다.

글에도 구구절절히 요기조기 구석구석 남편에 대한 한탄을 많이 써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왜 탈혼을 못하는가?

그럼에도 탈혼을 못하는 것 자체가 아가리 페미니스트인, 혹은 남미새 인 것 아닌가?

결국 남편이란 남자에게 기대고 있고, 가족에 남자가 있는 이상, 남자의 이익 기득권에 나도 한 편일 테니까.

하는 생각이다.


탈혼을 못하는 이유는 사실 에너지가 없음이 가장 크다.

이혼은 그 자체로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웬만큼 불편하지 않으면, 이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비유가 적절할까 싶긴 한데. 지금 내 입장에서는

인테리어 잘 된 집에, 찰떡으로 어울리는 3천만원 짜리 쇼파가 있는데

그 쇼파에 옆면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안보이는 곳에, 흠이 있는 상황이라.

3천만원짜리 쇼파를 버리고 새로 쇼파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랄까?


술, 도박, 폭력, 외도 그 어느것도 아닌 이유로 게다가 유책배우자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혼은 결혼을 장려하는 법치국가에서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남편은 어쨌던 좋은 아빠이고 ( 애들은 사랑하고, 애들에게 돈도 주고, 시간도 주고, 마음도 주고, 애들을 위해 사니까 )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인간이긴 하다. 그래서 더더욱 이혼이 쉽지 않다.


암튼, 내 딸 둘이 여성으로서 더 힘있게 살게 하기 위해서는 탈혼과 페미니즘의 삶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은지,

남미새여도 좋으니, 안정적이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 좋은지 고민되는 요즘이다.


큰 딸은 어제 우리의 부부싸움을 보면서,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자기 때문일 것 같다고,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본인을 낳았는데, 둘이 이혼하면, 자기의 탄생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니 자기 삶이 아무 의미 없어질 것 같다고 속상하다고 말을 했다.


그런 점에서 남미새고 뭣이고, 이미 저지른 일. 어떻게든 책임을 다하고, 딸들이 원하는데로 사는게 맞지 싶긴 하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게 아닌 자식을 위해서

내가 만든 생명을 위해서

남미새인 기혼녀지만, 탈혼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아가리 페미니스트로 살면 어떠냐 싶긴 하다.


하지만 이건 진심이다.

내 딸들은 정말 비혼이었으면 좋겠다.


애를 낳더라도 미혼녀로 살았으면 좋겠다.

씨만 뿌리는 존재에게 함부로 아빠 자리 안 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제일 중요할테니.

오늘도 출근해서 꼴보기 싫은 남편이랑 열심히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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