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준비, 차례 준비, 나는 안 함

by 지망생 성실장

시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부터, 나는 제사를 안 지낼 거라고 이야기 했었다.


결혼하기 전에, 아니 큰애가 3-4살 때만 해도, 제사 자체는 좋은 의미라고 생각했다.

이때 아니면 언제 가족들을 만나는가 싶고, 모여서 얼굴보고 맛난거 먹고, 조상님께 치성을 드리면 돌아오는 것도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며느리로서 제사를 접하고 그 부조리함을 깨닫고, 내 딸에게도 대물림 되는 것을 피하려면 투쟁가가 되어아 했다. 게다가 70년 넘게 제사를 지내는 종갓집인 친정엄마는 그 치성의 보답도 못 받고, 큰 딸은 시집도 못가, 둘째딸은 시집가서 힘들다고 징징대는 꼴을 보고 있구나, 심지어 결국 며느리도 없고, 본인들은 돌아가셔도 제삿밥도 못 먹는데, 싶은 생각이 들자 더더욱 제사가 꼴도 보기 싫어졌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지금도 하는 것 없지만, 당신에게 제사가 내려오면 당신이 지내라, 나는 우리집 청소 정도만 도와주고 특히 음식은 일체 도와주지 않을 것이며, 제사지낼때 나는 밖으로 놀러 나갈 것이다. 라고 선언했었다. 남편은 알았다고 나도 제사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말을 했었다.


하지만 시아버님이 작년에 돌아가신 후, 시어머님이 적어도 딱 3년은 제사를 지낼 것이다. 앞으로 3년은 사위들 포함, 설과 추석 그리고 시아머님 기일에는 제사에 참석하라고 명령하셨다.

사실 이 말을 듣는데.... 나야 며느리니까 그런다고 치더라도, 사위들보고 설과 추석에 3년, 6번을 본가에 먼저 가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에 진짜 놀라웠다. 그것은 우리나라 법도에 따르면 엄청난 것이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장남인 큰 사위나 외아들인 둘째 사위나 찍 소리도 안하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진짜 우리 시어머니 사위들은 엄청 잘 얻으신 것 같다.

(내가 그래서 만약에 내가 먼저 죽으면, 우리 애들은 시어머니가 길러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 엄마는 딸 둘 시집 잘 보내는 것에 실패했지만, 시어머니는 아들 딸 삼남매 진짜 결혼 잘 시켰으니까.)


암튼, 그렇게 작년 추석에 첫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나는 먼저 말한데로 일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시어머니께 제사준비 20만원을 드리고, 남편이 설거지를 한 것이 다였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날 원망했다. 정말 아무것도 안하느냐고, 꼴랑 돈 주면 다냐고, 설거지도 어쩜 남편을 시키냐고, 나는 굴하지 않고 모른 척 했다.


그러나 결국 남편에게

'돈을 드려도 어머님은 결국 장을 보고 요리(노동)을 하셔야 하니 힘든 것은 변함이 없다. 차라리 돈을 드리지 말고, 전과 나물을 사던지 직접 만들어 간다고 하는게 어떠냐.' 라고 훈수를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설에 남편이 직접 반찬가게에 가서 전과 나물 도합 10만원어치를 주문하고, 남편이 시어머니께 말씀드리니, '며느리에게 고맙다고 전해라.' 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왜 나에게 고맙다고 하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추석보다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남편은 생전 처음으로 반찬가게에 갔었다. 반찬가게가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던 사람이기에 새로운 경험이었나보다. 한 번 해봤으니 다음에는 혼자 할 수 있다면서 자신있어 했다.

에휴... 결혼 17년동안 남편 반찬가게조차 안 보낸 내가 죄인이지 싶었다.


암튼 나는 돈 10만원으로 설 준비를 마쳤다. 이제 조카들 세벳돈과 부모님들 세벳돈만 준비하면 된다. 결국 돈으로 다 할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그래서 설날에도 돈 번다고 홍보 문자를 돌리긴 했는데... 답이 없어서 쓸쓸하긴 하지만...


사실 나도 요리도 좋아하고, 다 같이 화목한게 좋은데, 왜 이렇게 야박한 깍쟁이 며느리가 되었는지 싶다.

조금은 속상한데, 그래도 독한 며느리가 되어야, 내 딸들이 좋은 선택을 하리라 생각이 드니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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