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만족! 소리/맛/생김새/향기/질감으로 나를 홀린 것
한여름에도 밤이 찾아오면 자연스레 장작에 불을 지핀다.
따닥따닥 장작 타는 소리는 무더운 여름밤에도 몸과 마음에 온기를 더해준다.
세상에 모든 잡념이 잠시나마 멈춰지는 마법 같은 시간. 그 순간이 바로 불멍이다.
혼자 있어도, 여럿이 모여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잠시 멈춰있는 힐링의 시간.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불그스름한 장작불빛, 얼굴에 들이 오는 따뜻한 색, 그리고 온도, 따닥따닥 불꽃의 소리, 참나무 향내 가득한 장작 연기, 그 안에서 서서히 익는 달콤한 군고구마 냄새까지 천천히 느껴진다.
그 시간을 잊을 수 없어 한겨울이 찾아왔건만 추위를 뒤로하고 또다시 우리 가족은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작년까지도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추위 속에서도 야외생활이 가능할까 걱정이었지만 올 겨울부터는 겨울나기가 가능할 것 같아 큰맘 먹고 새 텐트도 마련했다. 동계캠핑은 간절기나 한여름보다 챙겨야 할 것들이 산더미지만 새 텐트와 추가로 마련한 장비를 보고 우리는 "역시 캠핑은 아이템 빨이야"를 외치며 흐뭇한 마음으로 동계캠핑을 준비했다.
캠핑은 어릴 적에 나에겐 어쩌다 가끔 친척들이 모일 때 갈 수 있는 사치였다. 나의 유년기에 우리 집은 승용차가 없었기 때문에 고모나 삼촌이 몰던 작은 프라이드 자동차 뒷자리에 비좁게 어린아이 4~5명이 포개여져 캠핑 짐과 함께 운반되었다. 하지만 고된 이동시간도 잊을 만큼 한여름 지리산 계곡 아래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텐트에 밀키트도 없던 시절, 모든 식재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닭백숙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형, 동생들과 뒤섞여서 물장구치면서 놀았던 즐거웠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그려질 만큼 좋은 시간이었다.
밤이 되면 겨우 한두 사람 들어가서 잘 수 있을 비좁은 텐트에 형과 나란히 누워 종일 노느라 잠깐이라도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잠이 들까 봐 바짝 정신을 붙들어 매고, 저녁 먹고 모아놓았던 주변의 낙엽과 나뭇가지, 솔방울을 모아놓고, 등유 기름을 부어서 붙였던 장작불을 바라보다 스르르 잠들었던 기억은 지금도 나에게 좋은 은 향수가 되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하루 종일 고된 야외활동을 마무리하고, 피곤하지만 아이들과 화로대에 옹기종기 모여서 앉아 피어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시간과 겹쳐 보인다. 그만큼 캠핑과 불멍은 나에게 주는 힐링이 있다.
가만히 말없이 따닥따닥 불꽃의 소리를 바라보면 세상사 근심 걱정이 기억나지 않는 효과가 있다. 현대 시대에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불멍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노르웨이의 한 방송국에서는 기차가 달리는 화면만 하루 종일 방영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청해 이슈를 끈 이유도 불멍과 같은 까닭이 아닐까?
장작불 끝에 하늘로 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면 하늘에서는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빛나고 그 아래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조용한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게 나에겐 너무나도 고마운 시간들이다. 이 시간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텐트를 칠 기력이 없을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사랑하는 아내와 나의 아이들과 그 자식들까지 오손도손 앉아서 불볕을 쬐는 날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