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에츠 신칸센 - 겐비 신칸센
흔히 미술관이라 하면 고정된 장소에 그림이나 조각상과 같은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풍경을 상상하기 쉽다. 작품은 온도와 습도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고, 한 번 이동시키려 해도 상당히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작품전을 하더라도 매일매일 작품을 교체하거나 배치를 다르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의 틀에서 벗어나 움직이는 열차에 미술관을 담아놓았다면? 사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상상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게 다가오는 장면은 아니다. 미술관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열차의 이름은 겐비 신칸센. 겐비(現美)는 현대 미술관의 약자를 일본식으로 읽은 발음이다. 예술을 담아놓은 열차답게 열차 엠블램부터 외부 내부 할 것 없이 이때까지 봐온 열차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겐비 신칸센은 현재 죠에츠 신칸센 구간인 니가타역에서 에치고유자와역 사이를 운행하고 있다. 현재 이 구간은 죠에츠 신칸센 구간 가운데서 운행 빈도가 낮은 편에 속하는 구간으로, 나머지 구간인 에치고유자와역에서 오미야(실질적으로는 도쿄)역까지만 운행하는 열차도 있을 정도다. 그 두 열차는 이름으로 구분하고 있다.
도쿄역에서 출발해서 니가타역까지 전체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는 '도키호'라는 이름이 붙었고, 똑같이 도쿄역을 출발해서 중간 정차역인 에치고유자와역(스키 시즌이 되면 에치고유자와역의 다음 역이자 임시역인 가라유자와역)까지만 운행하는 열차는 '다니가와호'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러니까 겐비 신칸센은 상대적으로 운행 빈도가 낮은 니가타역에서 에치고유자와역 구간을 운행함으로써 승객 유치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 열차는 매일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말 및 공휴일을 위주로 운행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 열차와 같이 특정 기간에만 운행하는 열차를 꽤 많이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섬나라 사람들이라는 특성을 잘 이용한 것으로 보였다.
섬 지역은 예전부터 육지에서 물자가 공급되지 않으면 섬 안에서 자급자족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만 있는 섬에서는 자급자족이 사실상 쉽지가 않다. 따라서 육지에서 들어온 것은 상당한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소비 패턴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일본의 상품을 보면 유독 기간 한정, 지역 한정 등 '한정(限定)'이 들어가는 상품이 많고, 이런 상품이 보통의 상품보다 더 비쌈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는 경향을 볼 수 있었다.
아무튼 겐비 신칸센은 공휴일이라는 한정된 날짜를 위주로 운행하고 있다. 거기에 이 열차는 6량 편성으로, 다른 열차들과 다른 편성을 갖추고 있다. 물론 11호 차부터 시작하는 차량 번호 또한 그 위에 있는 1호 차부터 시작하는 열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외형부터 일반적인 신칸센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던 겐비 신칸센. 단 한 대밖에 없는 콘셉트로 열차를 완전히 개조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열차라도 외관을 어떻게 꾸미냐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는데, 겐비 신칸센을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 열차는 보이는 것처럼 기존 신칸센과는 다른 미니 신칸센을 개조한 열차다. 따라서 보조 발 받침대를 볼 수 있다. 이 열차가 미니 신칸센으로 활용될 때는 10량 편성의 일반 신칸센 열차와 병렬연결을 통해 이동하게 된다. 그래서 일반 신칸센 10호 차의 다음 번호인 11호 차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겐비 신칸센은 병렬연결을 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행함에도 불고하고 1호 차가 아닌 11호 차부터 시작하는 번호 또한 일반 신칸센과의 차별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겐비 신칸센은 특이하게 11호 차를 제외한 나머지 객차는 모두 자유석으로 운영 중이다. 지정석 티켓을 구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특별히 지정 좌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야말로 움직이는 미술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관광 신칸센인 토레이유 신칸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열차 안내판과 행선지판에는 겐비 신칸센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굳이 구분을 하려면 열차 번호(위 사진에서는 452호)로 구분하거나, 자유석 차량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다. 열차가 7분 간격을 두고 출발하는 것도 눈여겨볼 점인데, 도키 318호의 경우 진짜 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열차지만, 도키 452호는 수송이라기보다는 관광의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열차 간격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겐비 신칸센은 임시 열차인 데다가 한 대로 여러 번 운행(1일 3회)을 해서 열차 자체의 운행 시간도 조절이 필요했다. 물론, 기존 열차들의 운행에도 방해받지 않도록 열차 사이사이에 투입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이러한 제약이 있기 때문에 열차 빈도가 낮은 곳에서, 짧은 구간을 운행하는 관광 목적의 열차 운행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다른 열차에서는 볼 수 없는 유일한 열차인 겐비 신칸센. 이 열차를 유일한 열차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화려하게 꾸며진 열차 외부부터다. 움직이는 미술관답게 눈에 보이는 곳은 모두 작품으로 꾸며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배경 역시 6량 편성의 열차 모두 다른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열차 전체를 두루 살펴보는 것도 이색적인 구경거리다.
겐비 신칸센은 일반 신칸센과 달리 열차 내부에 도록이 비치되어 있다. 거기에는 열차마다 어떤 작품이 있는지, 또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이 도록을 참고하면서 열차 내부를 돌아보면, 진짜 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특히 신칸센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라서 철도 특유의 소음이 없는 것도 한 몫한다.
11호 차를 제외한 나머지 객차는 모두 자유석인데, 그럴만한 이유는 열차 내부를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열차 절반을 차지하는 작품과 거기에 나란히 놓여있는 아늑한 소파. 각 객차마다 다른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열차가 운행하는 1시간 남짓 시간으로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렇게 열차에 좌석을 없애고 작품을 설치한다는 것은 그만큼 승차에 따른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수익을 포기하더라도 이 열차를 운영하는 이유는, 열차가 단지 수송의 목적만 있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면서 좀 더 친근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 상대적으로 이용 빈도가 낮은 지역을 택함으로써 지역 활성화에도 이바지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이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지역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열차와의 연계 교통망도 잘 구축해놓아서 어느 지역에서나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아무리 겐비 신칸센이 훌륭한 열차라고 한들, 찾아오기가 힘들다면 누가 일부러 돈과 시간을 써가며 찾아올 것인가?
한편 지정석인 11호 차는 다른 객차에 비해 아주 한산하다. 지정석에 앉아있는 승객이라도 12호 차부터 펼쳐지는 작품세계에 빠져드느라 자리에 앉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1호 차는 일반적인 좌석을 설치해놓은 것도 아니다. 11호 차에도 좌석 시트는 물론 바닥, 천장에 이르기까지 작품세계로 가득하다.
특히 터널이 많은 죠에츠 신칸센의 환경을 반영했다는 아치형 천장은 모르고 볼 때와 알고 볼 때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노란색 바탕의 좌석 시트 역시 햇빛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각 차량마다 특색이 있는데, 어린이를 위한 놀이 공간(13호 차)까지 갖춰놓을 정도로 가족 단위의 승객 유치를 위해 노력한 흔적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