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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Apr 29. 2020

헬로키티를 품은 열차

산요 신칸센 - 헬로키티 신칸센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만화가 발달해 있다. 아기자기한 캐릭터로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을 만큼 상당히 대중화되어있다. 이런 점을 교통수단에서도 잘 이용하는 것 같다. 이는 신칸센도 예외가 아니다. 만화와 신칸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조합이 하나의 콜라보를 이루면 어떻게 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열차가 산요 신칸센과 헬로키티가 아닌가 싶다.


헬로키티 신칸센 관련 안내.


  신칸센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헬로키티가 신칸센과 만난다는 이 안내문을 보면서 느꼈던 첫 번째 생각이었다. 데뷔하기 전부터 신칸센 주요 역에서 이러한 홍보 안내를 통해 호기심을 자극했던 헬로키티 신칸센. 이 열차는 2018년 여름 산요 신칸센에서 처음 선보였다. 리뉴얼한 열차는 500계 신칸센으로, 한 때 도카이도 산요 신칸센에서 가장 빠르고 날렵했던 열차였으나, 지금은 산요 신칸센의 고다마호로만 운행 중인 열차다.


헬로키티 신칸센 이전에 나온 에반게리온 신칸센.


  사실 헬로키티 신칸센 이전에도 500계 신칸센을 활용한 열차는 있었다. 바로 에반게리온을 접목시킨 에반게리온 신칸센이 그 열차다. 이 열차의 운행 종료와 함께 새로운 500계 신칸센 콜라보 열차가 바로 헬로키티 신칸센이다.

   신칸센은 터널과 높은 교각을 위주로 다니기 때문에 재래선 열차에 비해 외부 모습이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그리고 열차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역이 아니고서는 열차에 어떤 래핑을 입혀놓았는지도 쉽게 분간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이렇게 만화 콜라보 열차를 도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은 열차를 직접 타보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별도의 표기가 없는 헬로키티 신칸센.


  사실 헬로키티 신칸센은 헬로키티라는 이름만 있을 뿐 여느 열차와 다를 바 없이 운행하고 있다. 그래서 들어오는 열차가 헬로키티를 반영한 열차인지 인터넷 홈페이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승차권 역시 별도로 헬로키티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지 않다. 만약 승차권이라도 헬로키티 신칸센이라는 이름을 따로 기입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눈에 띄는 열차 외관.


  아무튼 평범한 고다마호로 운행하는 것처럼 나와있는 헬로키티 신칸센은 승강장에 열차가 진입할 때까지 진짜 헬로키티 신칸센이 들어오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 평범하게 승객을 맞이한다. 그러나 승강장에 모습을 드러낸 열차는 우려와 달리 외관부터 분홍빛의 화려한 뒤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듯 카메라 플래시에도 아랑곳 않고 정차 위치에 맞춰 정차하였다.


열차 외부 전체를 래핑한 헬로키티 신칸센.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에도 알록달록하게 꾸며놓았던 헬로키티 신칸센에서 무언가 묘하게 키티 세상에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처음부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 열차를 모르고 탔을 승객들에게는 깜짝 선물을, 알고 탔을 승객들에게는 황홀감을 선사하는 것 같다.


좌석 배치도. 


  이 열차는 기존 산요 신칸센의 고다마호와 마찬가지로 8량 편성 열차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존 신칸센 열차에는 없는 특별한 공간이 1, 2호 차에 걸쳐 마련되어 있다. 1호 차는 '헬로 플라자'라는 이름으로, 2호 차는 '카와이(일본어로 귀엽다) 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름까지 붙어있을 정도로 분명 무언가 있을 것만 같았던 1, 2호 차. 그곳으로 향해보았다.


헬로키티 플라자로 꾸며놓은 1호 차.


  1호 차는 다음과 같이 열차라는 이미지보다 전시실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이곳의 이름이 헬로 플라자인 만큼, 바닥부터 출입문, 벽면까지 헬로키티 캐릭터로 꾸며놓았다. 왜 1호 차를 헬로 플라자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던 인테리어였다. 특히 외부 배경과 동일한 분홍색 톤으로 꾸며놓아서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헬로키티를 활용한 지역 마스코트.
출입문마다 하나씩 자리 잡은 헬로키티 마스코트.


  좌석을 포기하고 만든 헬로 플라자. 이렇게 완전히 헬로키티로만 장식해놓은 열차 내부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열차를 탔다는 인증샷을 담을 수 있는 포토존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에도 지역과의 상생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8량 편성의 헬로키티 신칸센에는 각 호 차마다 각기 다른 마스코트가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다. 

  8종류의 마스코트는 산요 신칸센이 지나는 현과 인접한 현(오사카 부 포함)을 대표하고 있었는데, 산요 신칸센이 지나지 않는 산인 지역의 2개 현까지 아울러서 열차 편성과 같은 8종류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각 마스코트는 열차 출입문마다 자리 잡고 있는데, 다른 색의 리본과 띠를 달고 지역 특산물을 들고 있다. 이는 헬로키티를 활용해서 지역 홍보 효과까지 함께 누리고자 한 계획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어린이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다양한 상품 코너.


  그리고 1호 차의 하이라이트. 한쪽 벽면을 활용해서 어린이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기자기한 상품들로 가득 채운 이곳이다. 여기에 있으면 무언가는 사야 다음 객차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1호 차에 좌석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헬로키티를 채워 넣은 것은 바로 이 상품들의 판매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 실제로 여기는 어린이들의 시선에 포착되는 순간 손에 무언가가 쥐어질 때까지 떠나보내지 않았다.


창문 블라인드에도 헬로키티는 빠지지 않는다.


  카와이 룸이라고 한 2호 차는 사방팔방이 모두 헬로키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호 차와 달리 좌석은 배치되어 있지만, 이 좌석은 기존 신칸센 열차에서 보던 좌석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평소에는 숨겨져 있다가 사용해야 발견할 수 있는 창문 블라인드다. 이 블라인드도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다른 좌석의 블라인드도 한 번 내려보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좌석 시트와 팔걸이, 바닥까지 빠지지 않는 헬로키티 디자인.


  카와이 룸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2호 차는 좌석 시트는 물론 팔걸이, 바닥, 벽까지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헬로키티를 만날 수 있다. 헬로키티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2호 차 외의 좌석은 기존 신칸센과 동일한 모습으로 외관만 헬로키티를 만날 수 있을 뿐, 내부에 들어오면 그냥 일반적인 신칸센을 탄 기분이다.

  아무래도 헬로키티에 관심이 없거나 너무 급격하게 바뀐 내부를 보고 산만해할 수 있는 승객들이 있기 때문에 일부 객차에 한해서만 리모델링을 한 것으로 보인다. 헬로키티 신칸센은 겐비 신칸센이나 토레이유 신칸센과 같이 관광을 목적으로 한 신칸센이 아니라 정규 노선 중 일부 시간 대에 투입하는 열차다. 분명 이 점도 열차 일부만 리모델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다양한 형태의 래핑 신칸센.


  한편, 헬로키티 신칸센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래핑 신칸센을 만날 수 있는데, 그것은 장르나 열차를 가리지 않고 적용하고 있었다. 신칸센은 단순한 운송 수단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열차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제 일본은 모든 교통수단을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 그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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