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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열차 안에서 만끽하는 쉼표

야마가타 신칸센 - 토레이유 신칸센

by 철도 방랑객

일본 열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파격적인 모습으로 운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토레이유 신칸센이다. 신칸센이 장거리 수송을 위한 열차에서 탈피한 첫 번째 열차로, 신칸센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전환점을 마련한 열차라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토레이유는 열차를 뜻하는 트레인(train)과 프랑스어로 태양을 뜻하는 단어 솔레이유(soleil)의 합성어라고 한다. 그 많은 단어 중에 프랑스어를 차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90404_102608.jpg 신칸센 최초의 리조트 열차인 토레이유 신칸센.


신칸센에 리조트 열차 개념을 처음 도입한 토레이유 신칸센. 이 열차가 운행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관광 신칸센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부각한 토레이유 신칸센 홍보. 토레이유 신칸센의 주요 정차역인 야마가타역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이 열차에는 족욕탕이 있다. 좌석을 대신해서 무언가 꾸민 것도 파격적인데 그것이 족욕탕이라고 하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졌다.


20200425_234118.png 토레이유 신칸센 개발과 관련된 인터뷰.


이 열차가 탄생하기까지 약 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결집되었음이 분명했다. 인터뷰 가운데 인상적인 문구가 있어서 소개해본다.


"目的地へ向かうスピードではなく、乗っている時間そのものを楽しんでいただける新幹線"

- 목적지에 향하는 (빠른) 속도가 아닌, 타는 시간 그 자체로 즐거운 신칸센


특히 한국인은 힘든 세월을 이겨내기 위해 목적지만 바라보고 정신없이 뛰어만 왔다. 그래서 속도는 그 어떤 나라에 비해서도 목숨같이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빠른 성장을 한 지금, 이제는 그 속도를 줄일 필요가 있지만 여전히 사회 전반에 걸쳐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형 개량화 직선화를 비롯, 고속철도만 추구하는 우리나라 철도정책도 그런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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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이유 신칸센 환영 플래카드.


토레이유 신칸센은 미니 신칸센 구간인 야마가타 신칸센 구간을 운행한다. 그중 재래선 구간을 개량한 후쿠시마역에서 신조역까지의 구간에서 이 열차를 볼 수 있다. 즉, 신칸센이지만 속도는 내지 못하는 이름만 신칸센인 샘이다. 기획 의도에서 말한 대로 속도보다 즐길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기존 신칸센과 다른 신칸센. 그래서 열차가 정차하는 주요 역에서는 환영문구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트레이드 마크가 될 수 있었다. 토레이유 신칸센은 야마가타 지역의 자랑이자 상징인 열차로 자리 잡은 샘이다. 특히 토레이유 신칸센이 도입되기 전에는 그 어떤 신칸센도 관광을 목적으로 한, 소위 리조트 열차라 불린 열차가 없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자부심은 환영 플래카드 속에 잘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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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이유 신칸센 열차 및 엠블럼.


토레이유 신칸센은 다른 열차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어서 어디서 보더라도 시선을 끌었다. 이 구간을 운행하는 신칸센인 E3계 열차와 같은 열차를 사용하고 있는 토레이유 신칸센이지만 외관의 디자인 차이로 인해 다른 열차처럼 보인다. 과일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엠블럼도 독특함을 부각하는 요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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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내판 및 행선지판에서 볼 수 있는 토레이유 신칸센 열차 안내.


같은 츠바사호로 운행 중이지만 토레이유 신칸센의 경우 토레이유 츠바사라고 열차 종류부터 다르게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열차에도 츠바사가 아니라 토레이유라고 적어놓은 데서 수송을 위한 츠바사호와 확실히 구분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쿄까지 운행하는 츠바사호와 달리 도호쿠 신칸센에 합류하는 후쿠시마역까지만 운행하는 것도 토레이유 신칸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겐비 신칸센과 마찬가지로 열차 간격이 짧아진 것은 토레이유 츠바사호가 관광 목적의 부정기적인 운행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토레이유 신칸센이 운행하는 구간은 단선 구간이기에 30분 간격을 두고 출발하는 두 열차 간격이 더욱 짧게 느껴진다.


20200408_175804.png 토레이유 신칸센 좌석 배치(출처: JR동일본).


토레이유 신칸센은 총 6량 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열차도 겐비 신칸센과 마찬가지로 11호 차에 한해서만 일반적인 신칸센에서 볼 수 있는 열차와 같은 보통차 지정석으로 운행되고 있었고, 나머지 객차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모습의 열차로 탈바꿈해 있다.

특히 이 열차의 하이라이트인 족욕탕은 16호 차 객차를 통째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족욕탕의 입욕을 위해 준비하는 라운지도 15호 차에 마련해 놓아서, 실질적으로 이 열차의 좌석은 4량에 불과하다. 그러나 11호 차를 제외하면 1x2 배열로 좌석마저 줄여놓았다. 좌석이 많을수록 수익이 많이 발생하지만, 수익을 포기하더라도 관광열차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여행 상품 전용 좌석이라고 표기된 14호 차를 비롯해서 족욕탕과 연관 있는 15~16호 차다. 일반적인 열차표로도 이 열차를 탈 수 있지만, 상품 패키지를 통해서도 이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신칸센과는 느낌이 달랐다. 단순히 이동을 위한 운송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상품으로써 좌석을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족욕탕은 별도의 이용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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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x2 배열 고정식 좌석으로 되어있는 12 ~ 14호 차.


기존 열차에 비해 좌석이 확연히 줄어든 토레이유 신칸센의 내부. 특징적인 것은 고정식 좌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과, 좌석마다 고정식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마주 보면서 갈 수 있는 좌석은 가족 단위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나 싶다. 거기에 개개인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도 넓어서 마주 보고 간다고 하더라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공간이었다.


20190404_105524.jpg 그린샤 좌석임에도 불구하고 보통차 요금을 받는 토레이유 신칸센 11호 차 객차(사진은 다른 열차).


원래 미니 신칸센의 11호 차는 그린샤 좌석이다. 하지만 토레이유 신칸센의 11호 차의 좌석은 그린샤 용 좌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요금 산정은 보통차 요금을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신칸센 전용 노선을 달리는 열차가 아니기 때문에 승객의 편의를 생각한 처사가 아닌가 조심 스래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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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욕탕 및 열차 라운지 이미지(출처: JR동일본).


족욕탕은 기회가 닿지 않아서 직접 들어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JR동일본의 홈페이지에서 관련 이미지를 가져와보았다. 창문만 없다면 이 공간이 달리고 있는 열차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내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홈페이지에는 족욕탕에 사용하는 물이 온천수가 아님을 밝혔는데, 지역마다 온천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이 물이 온천수인지 아닌지도 관심거리가 된 모양이다.

달리는 열차에서 느끼는 족욕탕. 비록 온천수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온천욕을 하는 기분일 것 같다. 나아가 미니 신칸센 구간이어서 운행하는 구간에 터널이나 방음시설이 거의 없다 보니,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몸의 피로도 풀고 눈 구경도 할 수 있으니, 이것이 관광이 아닐까? 신칸센은 운송 수단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한 토레이유 신칸센. 이 열차로 인해 신칸센을 타더라도 관광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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