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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기후위기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나

Written by 리나





이제 5월이 코 앞으로 왔다. 봄 다운 봄이 사라진 지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10년 이상 훌쩍 지난 것 같다. 이제 곧 여름을 맞이하겠지.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온몸의 기운을 빼앗아 가는 무더위도, 더위에 맞춰 출몰하는 모기들도 싫다. 그래도 여름 하면 떠오르는 따뜻한 기억은 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하지만 선풍기만으로도 여름을 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여름밤에는 온 가족이 모기장을 친 거실 바닥에 누워 얇은 홑이불을 덮고 쪼로록 누워서 잤다. 열어 둔 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면서 가족들이랑 깔깔 대며 웃고 이야기하다가 소로록 잠이 든 기억들은 지금 떠올려도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진다.


이제 이런 여름은 산간 지역에서나 겨우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여름밤에 창문을 열어 두면 곧바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게 만드는 끈적하고 더운 공기만 방으로 들어올 뿐이다. 에어컨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열대야를 보도하는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일부 지역의 소식이기를 바랐는데, 내가 겪어야 하는 현실이 된 지는 이미 꽤 오래되었다.

매년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위는 더 빨리 찾아오고 더 오래 머물렀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 4,5년 이상은 되었다. “지구온난화”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에서 듣기 시작할 때만 해도 요즘 흔히 듣는 ‘기후위기의 티핑포인트’니 ‘6차 대멸종의 가능성’과 같은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전히 내 일상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고, 주변 사람들도 이 수상쩍은 더위를 연례행사처럼 듣는 장마나 한파 소식처럼 취급할 뿐이었다. 폭염 때문에 사람이 쓰러지고 심지어 죽는다는 이야기가 들려도 ‘에고 저런 쯧쯧 이를 어째’라는 반응 이상은 아니었다. 더울 때가 되니 더워진 거고 예전에도 이만큼은 더웠던 것 같고 더우면 에어컨 틀면 되고… 이런 식의 반응들은 내가 정말 유별나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떠들고 다니기가 어려웠다. 더위부터 시작해서 경험해 보지 못한 우울한 변화들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온난화로 인한 대기 정체 때문에 이제 1년 내내 경험해야 하는 미세먼지, 수온 상승과 해양 오염으로 인해 슈퍼마켓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거나 보이더라도 엄청 비싸진 해산물, 원하면 별 어려움 없이 샀던 채소들 값이 각종 한파, 장마, 가뭄 때문에 널뛰기를 하는 모습들 등등…

하지만 여전히 내가 보는 다수 시민들의 관심사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협하는 기후의 변화가 아닌, 좀 더 ‘잘’ 살기 위해 더 돈을 벌고 더 성장해야 하고 성공하기 위해 더 노력하는 것에 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 혹은 ‘심각한 것은 알겠는데 지금 다른 일들이 더 급하지’라는 이런 흔한 반응들은 아마도 ‘잘’ 사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아직도 과거의 경험에 머물러 있거나, 정말로 ‘내’가 ‘잘’ 사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들 지금의 이러한 방식의 삶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사는 이 사회에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수학 방정식 같은 질문이 아니기 때문에 만인이 동의할 답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렇게 위험한 기후 변화가 계속되면서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문제라는 판단이 들었다면 이제 행동해야 할 단계이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또 효과적으로 행동하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른다. 행동하기 위해 내가 가진 무엇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 행동으로 인해서 나 개인에게 어떤 결과가 올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이 의제가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지고 있고, 그래서 나는 이 기후 위기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나는 이 중요한 문제의 해결을 통해 좀 더 잘 살고 싶어서,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아직은 잘 알지 못하는 이 세계에서 한동안 지내 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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