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함께 키우는 일

마을에서 아이 키우기

by 앵두와 강풀

첫 아이를 낳고, 나는 참 많이 외로웠다. 삶에서 아픈부분은 그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에 더 분명하게,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나는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서야 비로소 엄마의 큰 자리를 더 크게 느꼈다. 예민하고 까칠한 첫 아이가 밤새 울음짓는 날이면, 그 울음을 받아주다 울음이 감염된 것처럼 나도 줄줄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은 너 하나를 건사하기 위해서 나라는 존재는, 나의 뿌리는 죄다 뽑혀버리는 기분이었다. 보고싶지 않은 나의 결핍, 나에게 없는 것을 한없이 부러워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첫 아이가 영차어린이집에 다니고, 적응이 잘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나는 마을카페 일에 적응하느라 마음과 몸이 분주한 날들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와 한참 씨름을 하고 있으면, 나 홀로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종종 느끼곤 했다. 어느 날, 하원 길에 아이가 골목 한가운데에서 난동을 피우는 일이 있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날 밤 나는 밤새 심리상담센터 사이트를 뒤지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아이의 모습을 오며가며 본 동네 사람들이 마을카페에 와서 몇 마디 말을 건냈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꼰대스러운 지적과 조언인가 싶어 날을 세우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들이 건네는 말이 그런 말이 아니었다. 진심어린 위로와 걱정을 담아 내게 보내는 말, 적당한 위로가 곁들어진 따뜻한 말을 듣고 밤새 얼어붙어 있던 마음에 온기가 도는 것처럼 여겨졌다.


고마운 일이었다. 심리상담센터 같은 곳을 얼쩡거리는 대신에 어린이집 교사를 만나 면담을 청했다. 그리고 나보다 아이를 먼저 키운 이웃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따.그때 내게 좋은 이야기를 해준 이웃들이 참 많다.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이 “솔이는 잘 클꺼야. 그런 일은 별일이 아니야” 라는 말들이다.


첫아이 육아휴직이 거의 끝나가는 겨울에, 전셋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른동네도 고려하면서 알아보라는 부동산의 조언이 있었지만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이사갈 집이 잘 구해지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었음에도 나는 일동에 살아야 한다는 고집을 꺽을 수가 없었다. 더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육아와 관련해서 주변 이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이미 아이를 키운 이들에게는 적절한 조언을 구하고, 함께 아이를 키우는 이들에게는 공감과 연대를 요청한다. 적절한 조언은 나에게 엄마라는 직업에 대한 배움을 제공하고, 공감과 연대는 내 아이의 문제를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육아 8년차. 오로지 일동에서만 아이를 키웠다. 시간이 쌓여서 이제는 육아가 새삼스럽게 힘들거나 어렵지 않는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육아와 관련된 사건들은 여전히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하지만 이제는 어려움이 내 결핍과 뒤 얽혀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고백할 때, 나를 누구보다 걱정해주는 육아동지들이 여전히 함께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들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연대, 공감과 조언을 제공할 마음이 충만하다.


친정엄마와 아이를 키우는 이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그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부러워하고 있을 틈이 없다. 삶은 이어지고, 육아는 실전이며 생활이기에 나는 내 나름대로의 살길을 마을에서 찾았다. 단톡에 마실요청을 올리면 어김없이 품을 내어주는 이웃. 코로나19로 발열체크를 해야하는 날이면 우리집에 새벽부터 아이를 보내는 이웃, 간절기에는 늘 정리한 옷을 보내주는 이웃들이 곁에 있다.

그래서 사실, 여전히, 아직도 이곳, 일동에 살아서 참 다행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누구나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