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4일 새벽. 나의 강아지가 18년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아직 그때의 슬픔이 매해 4월마다 반복되고 있다. 원래도 눈물이 많은 사람인데, 그땐 정말 많이 울어서 오히려 그 감정에 대한 기억 때문에 계속 힘든 것도 있는 것 같다. 내게 그 아이는 나의 초중고, 대학교, 그리고 첫 출근까지 함께 했던 가족이었다. 내 짧은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그 포근한 털에 맞대며 보냈다. 함께 했던 모든 시간 나는 행복했고, 위로받았고, 감동 받았다.
그렇게 덕분에 내가 건강하게 성장할 동안 어느새 나이 들었던 나의 아가. 슬프게도 이제 죽을 때까지 너를 볼 수 없구나.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14년 4월 16일. 학교에서 들었던 세월호 침몰이라는 소식과 전원 구조라는 희소식. 그러나 그와 달리 참담 그 자체였던, 집에 와서 마주한 뉴스. 그리고 그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던 엄마. 방송에선 학생들의 마지막 문자를 보여주고 있었고, 그 나이가 나보다 겨우 한 살 위라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어리고도 어리다는 걸 차마 깨닫지도 못할 만큼 너무 소중하고 고귀한 생명들이었다.
사망자 299명, 실종자 5명.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325명이나 탑승해 있던 세월호였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사고 당시 119 최초 신고자가 단원고 학생이었다는 점이었다. 우린 그마저도 그들보다 늦었고 미흡했다.
그래서 나에게 4월은 슬픔의 달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닿아 있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물리적으로 절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멀어진 작은 생명. 그리고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그게 내가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던, 참혹한 사건의 희생자들. 죽음이 주는 무거운 슬픔으로 인해 생긴 망부석이 나의 눈물로 서서히 깎이고 있긴 하지만 결국 다 깎여 없어져도 그 자리가 움푹 파여 흔적이 남을 것이다.
그래서 어차피 완전히 없앨 수 없는 슬픔이라면, 그냥 마음껏 슬퍼하려고 한다. '마음껏'이라는 형용사가 그때 당시의 나를 마음껏 치유해 줬듯이, 슬프면 슬픈 대로, 그저 슬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