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시대. 2019년, 나는 그 시작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효율적이고 저렴한 자동화 시스템 앞에서 우리의 성실한 노동은 한순간에 ‘비효율적인 것’이 되었다.
2016년부터 5년을 다닌, 나의 첫 정규직 직장. 취업난 속에서 나를 사회인으로 자리잡게 해준 소중한 첫 직장. 당시 나의 직무는 ‘콘텐츠 큐레이터’였다. 회사는 포털 사이트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홈 화면에 노출될 콘텐츠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했다. 두 종류의 콘텐츠가 큐레이터들의 손길을 거쳤다. 하나는 기성 언론 매체들이 발행하는 뉴스(경성) 콘텐츠와, 다른 하나는 뉴스를 제외하고 ‘매체’라 불리는 모든 채널(매거진, 대안언론, 온라인 미디어 등)에서 발행하는 말랑말랑한 연성 콘텐츠. 큐레이터들은 매일매일 새로 나오는 콘텐츠들을 탐색하고, 가치판단을 하고, 카피라이팅과 썸네일 편집을 거쳐 우리 서비스에 전시했다. 트래픽이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게 성장세를 그리던 서비스였다.
나는 그 일을 좋아했다.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일을 핑계삼아 취향의 콘텐츠를 마음껏 탐색하고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아직 숏폼의 물결이 콘텐츠 업계를 휩쓸기 전이라 주로 긴 호흡의 글이 많았고, 나는 자기만의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채널예스 인터뷰를 가장 좋아했다. 어떤 글이 유독 마음에 와닿아 나를 벅차게 했던 순간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같은 취향을 가진 친구와 그 글의 ‘좋음’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하고, 혼자 필사를 하기도 했다. 불특정다수의 유저들 중 어느 누군가에게도 이 벅차오름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조용히 담아 서비스에 올리는 것이 나의 작은 즐거움이자 보람이었다.
주니어 시절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회사의 첫 번째 위기는, 다닌 지 3년이 됐을 무렵 갑자기 찾아왔다. 개발 부서에 콘텐츠 큐레이션을 ‘자동화’ 하라는 경영진의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말은 태연했지만, 사무실에는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건 곧,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뜻이라는 걸.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도 비용을 줄이기 위함이었을거다.
콘텐츠 본부 산하에는 2개 팀이 있었고, 그 중 나는 연성 콘텐츠를 담당하는 팀이었다. 모든 기사가 비슷하게 구조화되어있는 뉴스 기사의 특성 상 큐레이션이나 편집·배열을 자동화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단지 그 이유로 뉴스를 담당하던 팀이 우선 타겟이 되었다. 열 명 이상의 직원이 교대로 달라붙어 하던 업무를 자동화한다는 말은, 더 이상 회사에서 그들이 필요 없어진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달린, 청천벽력 같았던 그 결정은 <○○○ 자동화 프로젝트> 라는 무미건조하고 태연한 프로젝트명 아래 빠르게 착수되었다.
개발부서는 역량이 뛰어났다. 단 한 달 만에, 뉴스 기사의 품질을 점수화하고 랭킹을 매기는 자동화 시스템이 완성됐다. 유사한 기사들은 그룹으로 묶였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기사가 메인에 노출되도록 설계됐다. 시스템은 매일 데이터를 학습하며 스스로 성능을 고도화했다.
더 이상 24시간 뉴스를 띄우기 위한 교대근무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AI는 비용이 들지 않았고, 피로를 느끼지도 않았다. AI가 만든 결과물에 이상이 없는지 모니터링 할 극소수의 인원만 남겨졌다. 그 외의 직원들은 ‘경영 상의 이유’로 조용히 정리해고 되었다. 가장 오랫동안 회사에서 일해오신 팀장님과 본부장님도 함께.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는 잔인하게도, 뉴스 자동화 프로젝트를 마무리짓고 남은 직원들을 정리하고 나가는 것이었다.
2019년은 지금처럼 AI가 흔하게 언급되고 쓰이던 시절이 아니었다. IT 업계에서나 ‘미래에는 AI가 일자리를 대체한다더라’ 류의 음모론 같은 소문들이 이제 막 꿈틀대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일찍부터 AI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상실의 공포를 학습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운명의 화살이 나를 빗겨갔으니, 안도해야 했을까?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 이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불안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남겨진 동료들과 우리는 매일 이런 질문을 나눴다. “어떤 일을 해야 대체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