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만든 신규 서비스가 예산 부족으로 폐기된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돌아보면 그냥 복선에 불과했다. 그 사건이 길고 긴 비극의 서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공공기관들은 대개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이곳은 정치와의 얽힘이 참 지독했다. ‘정치색’을 이유로 예산이 사라지고, 인사권이 흔들리고, 기관 전체가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 앞에서 직원들은 이리저리 휘둘리고 분열되었다. ‘투쟁을 외치는 파’와 ‘조용히 버티자는 파’가 갈렸고, 새로운 노조가 결성되었고, 블라인드에서는 서로를 헐뜯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유연하면서도 소신 있게 직원들을 통솔해 줄 리더가 절실했지만 그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실타래가 계속해서 꼬여가면서, 중요한 분기점에서 상황은 늘 더 나쁜 쪽으로 치달았다. 생존을 위한 이런저런 시도들이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한 채,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 피로한 희망고문 속에 직원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다리면 해결되겠지”, “설마 회사가 없어지겠어?” 했던 내 마음속에서도 점점 희망이 사라졌다. 마음속 무게 추가 회사의 끝을 예감하는 쪽으로 기울 무렵. 나는 <공공기관은 안정적인 직장이다>라는 명제가 참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어떻게 보면 천재지변 같은 일이었고, 운이 나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바꿔 말하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이전 회사에서 사기업의 리스크를 피해 공공으로 도망쳐온 건데, 여기서도 같은 엔딩이라니. 참 운명의 장난 같았다.
회사의 곳간은 텅텅 비어갔고,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쓰는’ 일을 맡고 있던 나는 1년 동안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했다. 내 커리어를 위해서라면 일찍이 퇴사해야 했겠지만, 편안하고 등따수운 환경에서 맛본 안락함을 쉽게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반복하며 ‘존버’를 택했다. 일이 없는 하루에 익숙해졌고, 놀면서 월급 받는 삶이 부끄럽게도 싫지만은 않았던 시기였다. 안정적이고 편하게 살고자 했던 나에게 아주 극단적으로 편한 환경이 주어진 것이다. 나는 진하게 그 환경에 젖어들었다.
거센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음에도, 한편 내부에는 묘한 평온함이 감돌았다. 공공기관의 특성이 상징적으로 드러났던 시기랄까. 모두가 푸념과 냉소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동시에 보신주의가 만연했다.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때쯤 모두 퇴사했다.) 또다시 뜨거워지는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나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것도,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도 겁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회사는 나를 가만히 두었지만, 내 안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묵직한 이물감이 자라났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반전될 기미가 없자, 조금씩 커지던 위기감이 임계점을 넘었다. 서서히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걷히며 내가 잃고 있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이러다 영영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감각이었다. 나의 불안이 적신호를 킨 순간, 긴 잠에서 깨어나듯 내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