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의 경험이 내게 남긴 것
심리 상담을 한 번 받은 적이 있는데, 상담사 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무언가를 너-무 쫓으면 쫓을수록 오히려 멀어지게 된다고. 논리적으로는 설명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안정적인 삶’이라는 게 나에게 그런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정을 쫓을수록 나는 불안해졌다.
불안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불안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정년 보장이 되는 회사에 다니거나,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
의외로 내 눈에 띈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조건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자기 일을 사랑하고, 더 잘하고 싶어 자발적으로 시간을 쓰고, 건강한 욕심으로 눈이 반짝이는 사람들이었다.
고통과 힘듦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서 그보다 더 상위의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다.
저 사람들은 정년 보장도 안 되는 직장에 다니면서, 왜 불안해하지 않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일을 찾았을까?
불안을 동력으로 움직였기 때문일까? ‘이제는 이직 준비를 해야겠다’ 마음먹고 난 초반에는 관성처럼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최소한 그래 보이는) 직장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다시 쫓기는 사람처럼, 시험을 망친 사람처럼, 인생의 정답 같은 회사를 찾고 싶은 조급함과 갈증이 일었다. 조직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 반, 다른 안정적인 곳으로 회피하고 싶은 생각 반,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나는 또 후자를 택했다.
불안한 마음에 내가 택한 업계는 한때 찬란했으나 이제는 “좋은 시절 다 갔다” 소리가 나오는 곳이었다. 이 일이 내가 꿈꾸는 안정을 가져다주지 않을 거란 것을 알면서도. 썩은 동앗줄이라도 내가 잘 수리하면 그럭저럭 버틸 만한 동앗줄이 되겠지, 하고 정신승리했다. 컨설팅도 받고, 이력서도 쓰고 필기시험 공부도 하면서 그 업계에 들어가기 위해 몇 달을 노력했다.
그러다 문득, 3년 전 사기업에서 구조조정을 겪었을 때와 정확히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느낀 순간... 멈춤 버튼은 생각보다 금방 눌러졌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아닌 기준으로 인생의 항로를 결정하려 하고 있었다. 이 일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쉽고 편한 길만 찾으려고, 다른 직장보다 조금 더 안정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입사 준비를 하는 나 자신에게 현타가 왔다. 이렇게 해서 취직하면, 진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면접을 여러 개 앞두고 있던 어느 주말, 갑자기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처럼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나는 다 그만두고, 잠시 멈추기로 했다.
오랫동안 시스템의 일부로 살다 보면, 다시 주체적인 ‘사람’으로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낯설고 두렵게 느껴진다. 사람이 사람이 되는게 두렵다니. 듣기만 해도 아찔한 말이다. 마치 특정한 환경 속에 갇혀 생존 본능을 잃어버린 동물처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그렇게 살게 될 것 같았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물론 어디나 예외는 있고, 관료 조직에서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다르게 살 수도 있다. 어디든 자기만의 가능성을 펼치며 멋지게 일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으니까. 그런 분들의 브런치나 블로그를 보며 ‘어쩌면 나도...? 안정적인 조직에서도 꿈을 펼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회로를 돌리곤 했었다. 하지만 더 솔직한 마음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알량한 안정감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미련이었다. 내 꿈과 하고 싶은 일을 뾰족하고 단단하게 벼린 다음에, 그걸 실현할 도구로서 관료 조직을 다시 선택할 순 있겠지만, 지금은 솔직히 마음의 안정을 위한 보험처럼 여기고 있다는 결론이었다.
더 이상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장기적으로 더 큰 리스크에 나를 빠뜨린다면, 내가 나를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나 자신에게 고맙게도, 이전보다 조금은 성장한 선택이었다.
모든 면접을 포기하고, 들을까 말까 몇 달을 망설이던 인생 교육을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비로소 조금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