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11월의 공고

잘못된 신호, 올바른 선택

11월 중순의 아침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들은 이미 잎을 거의 다 떨어뜨렸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어제보다 조금 더 지쳐 보였다.

스물 일곱.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앞으로 뭘 해야 할지는 여전히 모른다.


전날 밤, 나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한 개비 피웠다.

환풍기를 틀고 창문을 열어둔 채로.

룸메이트가 잠든 후의 일이었다.

하루에 한두 개비 정도, 그것도 가끔씩.

큰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아침에 기숙사 엘리베이터 앞에 붙은 공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이 층에서 실내 흡연이 감지되었습니다.

기숙사 규정상 실내 흡연은 퇴사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문장은 짧고 건조했다.

나는 그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어제 밤 화장실에서 피운 그 한 개비가 떠올랐다.



일주일 전 일이 생각났다.


나는 학원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시급은 나쁘지 않았고, 일도 어렵지 않았다.

주로 문법 문제를 설명하고 독해 지문을 해석해주는 일이었다.


그날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전날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수업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문법 정도야 뭐' 하는 생각이었다.


수업 중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이거 관계대명사 what 아니에요?

학교 선생님은 that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잠시 문제를 다시 봤다.

분명 what이 맞는 것 같았다.


"아니야, 이건 what이 맞아."


학생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문제집을 다시 펼쳐봤다.

정답은 that이었다.

해설을 읽어보니 내가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학원장이 나를 불렀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고 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틀린 답을 써서 감점을 받았는데,

학원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썼다고 했다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다음부터는 확실하지 않으면 다시 확인하고 가르쳐. 알겠지?"


"네."


학원장실을 나오면서 얼굴이 뜨거웠다.

복도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그 학생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직접 사과하고 싶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 선생님. 괜찮아요. 아이도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되죠."


그분은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기숙사 공고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틀 후, 기숙사 관리실에서 일하는 선배를 만났다.

우연히 학생식당에서 마주쳤다.


"형, 그 흡연 공고문 말이야."

"아, 그거? 3층 애들 때문이야.

베란다에서 피우는데 냄새가 올라온다고 위층에서 항의가 들어왔어."


나는 4층에 살고 있었다.


"그래?"


"응. 근데 너도 피우지 마. 요즘 단속 심해."

선배는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 떠먹으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껌을 하나 샀다. 담배는 사지 않았다.


방에 돌아와서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고 그 학생에게 보낼 메일을 썼다.


"지난번 수업 시간에 내가 잘못 가르쳐서 미안해.

앞으로는 더 꼼꼼하게 준비할게. 혹시 모르는 문제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나서 창밖을 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대신 창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삶은 때때로 이상한 방식으로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어도,

우연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어도,

그 안에는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스물일곱의 나는 아직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신호들을 무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음 주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문법책을 펼치고 하나하나 다시 확인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표시를 해두었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룸메이트는 이미 잠들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셨다.

화장실에 가는 길에 거울을 보았다.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 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냥 내 기분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캠퍼스의 가로등이 보였다.

불빛 아래로 누군가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다.


내일 아침에는 조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담배 냄새 대신 신선한 공기로 폐를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이 그날 밤 내가 내린 작은 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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