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 산 체중계와 예상치 못한 법정 이야기
몇 년 전 담당했던 이혼 사건이 문득 떠오른다.
의뢰인은 남편의 부정행위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탐정을 고용했을까, 아니면 누군가 제보했을까?
정답은 뜻밖에도 '체중계' 때문이었다.
집에 있던 샤오미 체중계가 문제였다.
누군가 올라서면 측정된 체중을
휴대전화 앱에 자동으로 전송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의뢰인이 집을 비운 사이
남편이 상간녀를 집에 데리고 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여자가 체중계에 올라간 것이다.
의뢰인의 체중은 40kg대, 남편은 80~90kg인데
갑자기 60kg 전후의 수치가 기록되었으니
깜짝 놀랄 만했다.
이를 계기로 조사를 시작했고,
결국 부정행위를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체중 측정만으로 부정행위가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증거들과 함께 제출되어 승소할 수 있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시대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런 사건을 경험한 나조차,
태어나서 처음으로 체중계를 구매한 것은 얼마 전 일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운동 부족의 비만 상태이기에,
학교나 군대 신체검사를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체중을 측정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 '금주 50일'의 결과가 궁금해졌다.
다니던 사우나 부설 GYM의 인바디 기구로 몸을 스캔했는데,
키를 입력하고 올라서니 체중은 물론이고
근육량, 체지방률, BMI, 내장지방 등
여러 수치가 A4 용지 한 장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나왔다.
예상대로 좋은 상태는 아니어서
설명을 듣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만 어릴 때와 달리 크게 부끄럽거나 창피하다는 느낌보다는
'음, 신경을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기적으로 측정해 보면 어떨까 싶어
생애 처음으로 체중계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체중계의 세계도 다양했다.
단순히 체중만 측정하는 것부터
인바디처럼 다른 수치까지 체크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 측정된 수치를 저장해서
변동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까지.
당연히 기능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거의 일주일을 고민하다가,
기왕 사는 거 좋은 걸로 사자 싶어서
가정용 인바디 제품 중 하나를 구매했다.
주문 후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도착했는데,
그게 어제 일이다.
다른 수치들은 예상대로 좋지 않았지만,
한 가지 놀라웠던 건
체중, 체지방률, 근골격량의 경우
어제 자기 전 측정치와 오늘 기상 후 측정치가
거의 1.5kg 가까이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기상 후 측정이 그만큼 적게 나타났다.
그 사이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기계가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밤사이에 내 몸에서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기상 직후나 잠자리에 들기 직전 등 하루 중 특정한 시기를 정해서
정기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말할 것 없이
수치가 적게 나오는 '아침'을 선택한다.
큰맘 먹고 고가의 체중계도 구입했으니
정기적인 측정을 통해 건강관리를 조금씩 해봐야겠다.
마침 며칠 후면 드디어 50대에 들어서니까.
법정에서는 체중계가 부정행위의 단서가 되었지만,
내 삶에서는 건강관리의 시작점이 되었다.
같은 도구라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흥미롭다.
어쩌면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런 것 같다.
관점에 따라,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 말이다.
내일도 아침 기상 후 체중계에 올라서며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숫자 하나하나가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