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라는 이름의 불편함

명절이면 찾아오는 전화 한 통

명절이 다가오면 예상되는 일이 하나 있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사람들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다.

대개 안부 인사로 시작해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간다.

"있잖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한밤중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자기 지인을 바꿔주며 상담을 요청하는 때도 있었다.

이런 일이 불편하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반응이 가관이다.

"그거 몇 마디 해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


사무실에 찾아와

무료로 서면을 써달라고 조르는 사람도 있었다.

정당한 수임료를 내고 의뢰하라고 하면

"그래봐야 한두 장 적어주는 건데 뭘 돈을 받으려고 하나"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소고기를 팔고 있었다면, 이들이 똑같이 행동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값


영화 '다크 나이트'에 조커의 명대사가 있다.

"뭔가 남보다 잘하는 게 있다면 절대 공짜로 해줘선 안 돼."

악당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재능 기부라는 표현이 있다.

듣기엔 아름답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곧 가치다.

가격이 없는 것은 무가치하게 여겨진다.

재능을 공짜로 나눠주는 순간,

그 재능은 시장에서 가치를 잃는다.

그 일로 먹고사는 수많은 사람의 밥줄을 위협한다.


재능을 기부하고 싶다면

차라리 그 재능으로 돈을 벌어 기부하는 편이 낫다.

실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더 그래야 한다.

그래야 시장 질서가 바로 선다.


내 전문성은 십수년간 쌓아온 지식과 경험의 결과물이다.

새벽까지 판례를 뒤지고,

의뢰인의 사연을 곱씹으며

최선의 방법을 찾는다.

법정에 서기까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간이 투입된다.

그것을 "몇 마디 해주는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나를 포함한 모든 법률가를 모욕하는 일이다.


공짜의 무게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하는 건

프로로서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무료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가격이 없는 상품은

문제가 생겨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공짜라면 의심부터 하는 게 맞다.

공짜인데 가치 있는 건 드물기 때문이다.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요령껏 대처하는 법도 익혔다.

하지만 지식이나 재능 같은 무형의 재화를

‘상품’으로 보지 않는 이들은 여전히 있다.


이제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내 전문성은 가격이 있는 나만의 상품이다.

친구든 지인이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수임료를 지불하고 의뢰하는 이들에게만

내 지식과 시간을 쓴다.

그게 나를 존중하는 일이고,

동료들을 존중하는 일이며,

궁극적으로는 내 의뢰인들을 더 잘 섬기는 일이다.


명절이 다가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화가 올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죄송하지만, 이건 제 일입니다.

사무실로 방문해 주시면 정식으로 상담해 드리겠습니다."


숫자가 따라오지 않는 말은 허울일 뿐이다.

돈을 제대로 챙기는 태도는 속물적인 게 아니라

프로로서 당연한 마음가짐이다.

공짜는 그게 무엇이든 가치를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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