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없음.
프롤로그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었다.
2025년, 누군가는 가짜 이름으로 살았다.
돈을 사기 쳐서 사라진 사람도 있었고,
아버지로 3년을 살다 조용히 사라진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하루에도 두 번 죽었고,
어떤 아이는 세 번째 이름으로 학교에 다녔다.
주소가 팔리고, 과거가 대여되며,
타인의 진료 기록으로 연명한 사람도 있었다.
남겨진 건 가짜 기억과 진짜 상처였다.
뉴스는 매일 같은 이야기를 했다.
피해자들은 울었고,
전문가들은 분석했고,
정치인들은 약속했다.
사람들은 점점 두려워졌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
관계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보이게 만들기로 했다.
2027년 여름,
투표용지에는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모든 시민 정보의 시각화에 찬성하십니까?”
67.4%가 찬성했다.
반대 이유는 "아직 이르다"였고,
찬성 이유는 "속고 싶지 않다"였다.
사람들은 믿었다.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더 투명해질 것이라고.
그 믿음은 가벼웠고, 결과는 무거웠다.
삭제된 코드로는 구조 요청도,
사망 신고도 되지 않았다.
이웃은 ‘기록 없음’으로 떠 있었고,
아이들은 인사를 데이터로 배웠다.
투표가 끝난 밤, 거리는 조용했다.
사람들은 밥을 먹고, 뉴스를 보고, 잠들었다.
아무도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정확히 몰랐다.
시스템은 1년 만에 완성됐다.
머리 위에 뜨는 작은 빛.
홀로그램처럼 투명하지만,
확실한 색. 초록. 파랑. 노랑. 빨강.
그리고 아무것도 뜨지 않는 사람들.
길을 걷다 마주친 이의
머리 위를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상점에서, 병원에서, 은행에서
색깔부터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곧 모든 것이 당연해졌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머리 위에 아무것도 뜨지 않는 사람들.
사람들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도와야 할지, 피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보지 말아야 할지.
매뉴얼에는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모르는 척.
편의점 직원은 계산대 앞의 사람을 바라보다
다른 손님을 받았다.
병원 접수직원은 "잠시만요"를 말한 뒤
다른 서류를 넘겼다.
복지센터 상담사는 규정집을 뒤적이다가
"확인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잊었다.
악의는 없었다.
책임도 없었다.
단지 그들을 위한 문장이 없었을 뿐이었다.
5년이 지났다.
코드가 있는 사람들의 세상은 효율적이고,
예측 가능하고, 질서 정연했다.
초록은 초록끼리, 파랑은 파랑끼리.
서로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코드가 없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숨 쉬었고, 걸었고, 가끔 웃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한 단어는 사라졌고,
사전에서 밀려났다.
마치 흐릿한 사진의 가장자리처럼,
현실 밖으로 천천히 밀려났다.
사람들은 가끔 물었다.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곧 저녁 준비를 했고,
내일 일정을 확인했다.
질문은 그 안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세상은 조용했다. 질서 정연했다. 투명했다.
그리고 그 투명함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기억하지 않게.
그들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봄도 그중 하나였다.
한때는 초록색 빛을 가졌던 사람.
지금은 머리 위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
시스템이 읽지 못하는 사람.
기록 없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