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천천히 사라지는 법

기록없음.

by 바인

가끔, 이봄은 여전히 출근 중인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자동문을 지나고,

사람들 사이를 걷는 반복 속에서

몸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고,

머리는 그것이 어디였는지를 자꾸 잊었다.

예전엔 책상 위에 작은 선풍기가 있었다.

누렇게 바랜 흰색,

돌아갈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났지만

바람은 일정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팀장보다 먼저 나가면 안 됐다.

계단에서 신발을 조용히 끌며

내려가는 속도까지 이봄은 익숙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불편한 질서가 아니라,

세상과 연결된 방식이었다.

“이봄 씨, 이건 진짜 괜찮았어요.”
기획안 위에 놓인 빨간 펜.

그렇게 말해준 팀장의 얼굴이,

지금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다른 사람은 아무 말 없었지만,

그 말 한 줄로 하루는 충분했다.

그날 퇴근길,

이봄은 편의점에서 맥주를 하나 샀다.

맨 위에 남은 마지막 캔.

그걸 꺼내는 동안 이상하게 손끝이 차가워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지 않고

마신 그 맥주는 쓰고, 조용했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권한이 줄어든다는 문자는 한 달에 한 번 왔다.
[알림: 귀하의 보건등급이 L2에서 L3로

변경되었습니다.]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올라갈 수 있다고도.

하지만 시스템은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빼앗기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잡힌 영수증을 접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작은 네모가 될 때까지.

어머니는 병원 대기실에서 항상 잡지를 펼쳐두었다.

보는 둥 마는 둥.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면

어깨를 펴고 일어났다. 작은 가방을 다시 들고.
“봄아, 병원 냄새 나지 않아?”
그 말을 들으면, 이봄은 고개를 젓고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그 온도만큼은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손도, 그 병원도,

이봄에겐 닿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고객님의 계정은 현재 일시 중지되어 있습니다.”
앱 화면에는 그 말만 떠 있었다. 잔액은 존재했지만,

그것을 사용할 자격은 사라진 상태였다.

이봄은 두유 하나를 내려놓고, 다시 물병으로 손을 뻗었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도 점점 작아졌다.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이 다행인지, 비극인지 구별되지 않는 하루.

구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시간들.

그런 날은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신문을 읽고, 책장을 넘기고, 종이 냄새를 느끼며

살아 있다는 기분을 조금 되찾았다.

책장을 덮고 고개를 들었을 때 머리 위의 조명에 먼지가 떠 있었다.

그것은 공중에 머물다 사라졌고, 아무도 눈치채지 않았다.

그것이 이봄이 천천히 사라진 방식이었다.

기억은 이상한 방식으로 남는다.

냄새, 습도, 버스 정류장에 멈춰 선 발끝 같은 것들.

기록되지 않았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들.

이봄은 요즘 그런 기억을 자주 떠올렸다.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디까지가 사라졌고, 어디부터가 남은 건지.
그건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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