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박미정이 만난 사람

기록 없음.

by 바인

박미정은 매뉴얼대로 일했다.

출근은 정각. 퇴근은 예외 없음.

화장실은 점심시간 전후.

볼펜 색은 사안별로 구분했다.


빨강은 반려, 파랑은 보류, 검정은 승인.


책상 오른쪽 모서리엔

3년째 물을 주지 않은 선인장이 있었다.


그날 오전, 창구 번호표 57번이 울렸다.

박미정은 화면을 확인하다 잠시 멈췄다.


봄. 코드 없음. 주소 없음.

회색 알림창 하나.


정확히 말하면, 확인해도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한 번 더 조회. 같은 결과.


고개를 들었다.

여자가 서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

접힌 소매.

가라앉은 눈빛.

그리고… 기다림.

그 기다림이 초조해서 바라보기 힘들었다.


매뉴얼대로 말했다.

"기록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여자는 할 말을 찾듯

애꿎은 작은 종이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다른 신분 확인 자료 있으실까요?"

"없어요."

"이전 민원 이력도 없으시고요?"

"…없대요."


박미정은 다시 화면을 봤다.

회색 창은 말이 없었고,

규정은 반려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는 규정집을 열었다.


'인식 불가 대상자 응대 절차'

ㆍ응대 불가 문구 고지

ㆍ반복 민원 시 관리자 호출

ㆍ추가 응대 금지


책을 덮으려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지금 어떤 도움 필요하신가요?"


그 문장은, 매뉴얼에 없었다.


여자는 대답이 없다.


조금 뒤, 작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여자의 시선이 바닥으로 함께 떨어졌다.

"그냥 되는 게 있나 해서요."


그 말은 투명한 창구 벽에 부딪혀 흩어졌다.


박미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매뉴얼에 없었으니까.


여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박미정은 자리를 떠나는 그 무력한 걸음을

끝까지 눈으로 좇았다.


꺼지지 않은 회색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되는 게 있나 해서요.’

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


정말 '그냥'이었을까.

박미정은 그 자리에 한참 앉아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걸렸다.


서랍을 열었다.

삼색 볼펜 옆, 한 번도 쓰지 않은 연필.


박미정은 연필을 꺼내

새 메모장을 폈다.


빈칸 하나. 날짜.

그 아래 작게

이봄/기록 없음 / 질문’


퇴근 무렵, 사무실은 조용했다.

박미정은 책상 위 선인장을 바라봤다.

3년째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살아 있었다.


그녀는 찻잔을 들고 급수대로 갔다.

물을 조금 담아와서, 선인장에 천천히 부었다.


물이 흙에 스며드는 소리.

작지만 분명히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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