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지워지는 시간

1장.존재 오류 1

by 바인

1-1

이봄의 머리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개찰구 앞에 멈춘 순간, 스캐너가 그녀를 지나갔다.

화면에는 공백만 남았다.

기다리던 발소리들이 짧게, 무겁게 흔들렸다.

이봄은 돌아보지 않았다. 익숙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대주세요.”

역무원의 목소리는 공손했고, 피곤했다.

기계는 그녀를 읽으려 했지만 읽을 게 없었다.

스크린은 여전히 비어 있었고, 작은 한숨이 뒤따랐다.

“수동 확인이 필요겠네요.”

그 말은 곧,

그녀가 시스템에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한때 그녀의 머리 위엔 초록색 빛이 떠 있었다.

밝고 단정한 색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신뢰했고, 통과시켰고, 기억했다.

지금은 없다.


이봄은 지갑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흑백 사진이 붙은 임시 통행증. 테두리가 해진 인쇄물.

유효기간은 한 달, 재발급할수록 줄어드는 권한들.

역무원은 그것을 오래 보지 않았다.

“들어가세요.”

지하철 안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초록, 파랑, 노랑. 사람들은 각자의 색깔로 움직였다.

각자의 속도, 각자의 범위로.

이봄은 맨 끝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머리 위 공간은 비어 있었다.

다들 모른 척했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전철이 출발했다. 창밖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두운 터널, 희미한 불빛들.

그녀는 그저, 이동 중이었다.


가방에서 작은 거울을 꺼냈다.

자신을 들여다보다가,

허공 위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손은 자꾸 그 자리를 찾았다.


작은 종이에 손끝이 걸렸다.

낡고 구겨진 종이.

이봄이라는 이름이 적힌 무늬 없는 명함이었다.

직함은 지워졌고, 로고는 희미했다.

그녀는 그것을 바라보다 접었다.

한 번, 두 번, 네모난 조각이 될 때까지.

종점에 도착했을 때, 조각들을 바닥에 놓았다.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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