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빙수 Sep 10. 2020

아내가 없는 날, 혼밥

그의 존재가 더더욱 소중해지는 날

 배우자를 실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하면 애들까지 데리고) 친정이건 시댁이건 그냥 여행이건, 집 밖 어딘가에서 며칠 머무르겠다고 나섰다가 계획을 바꿔 그날 밤에 돌아오는 것이라는 유머 글들을 종종 본다. 부부 생활에 있어 온전히 집에서 혼자 머무르는 시간이 가끔씩은 그렇게나 소중하고 필요한 법이다.  


 캠핑 여행을 떠나려는 여자 셋이 모이기로 한 약속 장소에 아내를 내려주고 30분쯤 지났을까,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 혹시 캠핑을 못 가고 다시 돌아오려는 건가 (걱정스레) 전화를 받았더니 아내는 압력솥으로 밥을 하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전기밥솥이 아닌 압력솥으로만 밥을 짓게 된 우리 집에서, 아직 한 번도 압력솥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나를 걱정해준 것이었다. 쌀 두 컵에 물을 부어 총 600ml 정도에 맞추고, 압력을 최대로 높게 맞춘 다음, 센 불에 올렸다 김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압력추가 완전히 올라오면 불을 끄고 다시 압력추가 완전히 내려갈 때까지 뜸을 들이라는 것이었다. 혹시나 도저히 모르겠으면 전기밥솥을 쓰라며, 냉장고 어느 서랍엔 미역국과 콩국물이 있고, 안쪽엔 나물이 있고, 서랍에는 돼지갈비 재워둔 것이 있으니 잘해 먹으라며, '잔소리'를 그만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아내는 2박 3일 캠핑을 떠났고, 나에게는 혼자임을 만끽할 수 있는 2박 3일이 주어졌다.


 집에 오니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돌아오는 운전길에도, 아내 친구 차에 짐을 실어준 후 곧 떠날 아내를 보고 있을 때에도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내도 뭔가 마음이 이상한지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의 냄새는 언제나 그렇듯 달콤하고 포근했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아내가 구름이마냥 애교를 부리는데도 쿨한 척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아내는 내가 주차장에서 나갈 때까지 우리의 차, 포포를 쫓아왔다.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내가 아내의 집에서 저녁 늦은 시간 버스를 타고 나올 때, 너무나 멋진 포즈로 전력 질주를 해서 버스를 쫓아오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는 이 캠핑 여행을 제법 기대했을 것이다. 이 멀고 먼 타지에서 맺어진 몇 안 되는 좋은 인연이다. 서핑, 캠핑, 클라이밍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나게 된 이들은 처음엔 서로 꽤나 달라 보였으나 그들이 만나면 만날수록 성격과 기질의 색깔, 음색이 잘 맞아 유대가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셋이 모여 여전히 끝날 생각 없는 코로나와, 이 무시무시한 더위와, 산불과, 이 피곤한 세상에서 잠시 떠나 쉬러 갈 예정이었다. 며칠 전에는 이를 위해 모처럼 장도 잔뜩 보고, 요즘은 술도 잘 안 마시는 아내가 21도짜리 소주 두 병도 샀다. 그러나 떠나기 바로 전날, 계속해서 심각해지는 산불 상황으로 인해 그들이 찾고자 한 숲 속, 계곡이 흐르는 캠프그라운드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전역의 거의 모든 캠프그라운드에 일시 봉쇄령이 내려졌다. 셋 중 하나는 어지간히도 떠나고 싶었는지 한밤중에 캠프그라운드를 검색하더니, 아침부터 전화를 해 열려있는 곳을 찾아내었다. 산불의 위험이 아주 적은,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였다. 그러나 그곳의 날씨 예보상 재가 날리고,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머무를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가지고 떠났고, 그렇기에 그에게 전화가 왔을 때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일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었다. 내심 그가 다시 집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분명 들었지만, 이왕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들이 자리를 잡아 2박 3일 즐겁게 놀 수 있기를 바랐다. 중간중간 아내가 보내는 문자를 보고 있으려니 정말 재밌고 신나게 놀고 있는 모양이다. 다행이다.


 그래, 그렇다면 자유의 몸인 나는 무엇을 할까. 집에 돌아온 나는 어제 설거지해둔 그릇을 정리하고, 마저 남은 설거지를 마무리했다.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시원하게 청소기를 돌렸다. 친구가 고맙게도 닌텐도 스위치를 빌려주어 며칠 전 시작한 '동물의 숲'을 잠깐 켜서 철광석을 모으고 왕연어를 잡았다. '너굴 상점'의 건축 의뢰도 맡겨 두었으니 내일이면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개복치를 잡아도 같이 신나 할 사람이 없어 금방 시들해졌다. 그러곤 맥주 한 캔을 까놓고 학교 일을 하고 있으려니 그나마 금방 저녁 시간이 되었다. 아내가 말한 대로 밥을 안치고, 냉장고에서 반쯤 해동된 미역국, 아내가 지난밤 재워둔 돼지갈비 한 장, 그리고 아내가 예쁘게도 손질해둔 야채들을 꺼내었다. 집 앞 그릴에 고기와 야채를 올려 두었더니 금방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지나가던 이웃들이 너무 냄새가 좋다며 내가 다 준비한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내가 다 해 둔 것을 굽기만 하고 있다고 답했다.


 아내의 부엌, "Yomi's Kitchen" 3년이면 풍월을 읊는 법이다. 내 나름대로 마늘을 썰고, 플레이팅을 해서 저녁을 먹었다. 그의 음식이 늘 그렇듯 오늘도 너무나 맛있었다. 혼자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거기에 맞장구를 쳐줄 그가 없어서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아내보다 훨씬 미숙한 칼질에 두텁게도 썰린 마늘 편에 입안이 엄청나게 아려왔지만, 그가 나를 위해 준비해두고 간 이 음식들에 감사하며 너무나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아내는 늘 그랬다. 같이 있을 때는 항상 둘이 호들갑을 떨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내가 놀러 나갈 때면 내가 밖에 나가서 신나 할 음식을 싸 주고, 그가 어딘가 갈 때면 -- 그의 관점에선 내가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내 관점에선 그가 준비한 것을 다 먹으려면 살이 잔뜩 찔 것 같을 정도로 풍족하게 -- 음식을 잔뜩 준비해주곤 했다. 아내가 미국에 오고 처음에는 1년에 한두 번 한 달 정도씩 잠시 한국에 들어갔다 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많은 요리들을 냉동해놓고 갔는지 모른다. 그 한 달 동안 내 식비는 거의 0에 가까웠다. 가끔 양파 하나씩 사는 것 외에는 집에서 먹을 요리건, 일하러 나갔을 때 먹을 도시락이건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었기에 나는 해동만 해서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감정의 기복이 커다란,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가라앉아 있는 나를 위해 그는 내 곁에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언제나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었고, 그 덕에 나는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살아간다. 언제나 그렇듯, 음식은 그의 사랑의 언어이다.


 오늘도 구름이와 보리의 성화에 일어나 보니 딱 아홉 시다. 침대 옆자리가 허전했다. 커피를 올려놓고 이를 닦았다.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양치컵에 물을 담아 입을 헹궜다. 물을 아끼기 위해 최근 아내가 내게 권장한 일이다. 현명한 아내의 '잔소리'는 거의 항상 옳은 말이다. 그가 없는 오늘, 그의 '잔소리'가 그립다. 아내가 콩국물을 갈아놓고 갔다. 아직도 덥고 뜨거운 한낮에 콩국수는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아내에게 '밥을 하는' 일은 하나의 개념이자 행동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위에 서술한 아내의 설명에 따르면, '밥을 하는' 일은 세분화된 개념과 행동의 집합체다.

 '쌀 두 컵에 물을 부어 총 600ml 정도에 맞추고, 압력을 최대로 높게 맞춘 다음, 센 불에 올렸다 김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압력추가 완전히 올라오면 불을 끄고 다시 압력추가 완전히 내려갈 때까지 뜸을 들이라는 것이었다.'

 다만 그에게는 이 개별적인 과정들이 너무나 익숙하고 숙련되어 있기에, '밥을 한다'라는 더 커다란 단위의 한 가지 개념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로는 '오늘은 타코 먹자'다. 타코라는 개념은 너무나 복잡하다 못해 추상적이다. 고기를 미리 재워두어 볶거나 생선살에 밑간을 하여 튀기고, 별의별 야채를 손질하고, 과카몰리를 만들고, 살사를 만들고, 또띠아를 만들고 [... 중략 ...]. 아내에게는 이러한 수많은 과정들이 체화되어 커다란 하나의 개념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아내의 수많은 '개념'들

 내가 오늘 콩국수를 먹는 일은 큰 개념으로 따지면 두 가지다. 콩국수 면을 삶고, 거기에 아내가 만들어 둔 콩국물을 붓는 것. 내겐 단지 국수를 삶는 것에도 면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삶아야 하는지, 물은 얼마나 잡아야 하는지 등등 생각하느라 한참도 걸렸다. 아내가 준비해둔 '콩국물'도 사실은 복잡한 하위 개념의 집합체다. 콩국수를 먹을 때마다 아내는 두어 시간을 앉아 콩의 껍질을 하나, 하나 깐다. 이 어려운 일을 그는 잘도 한다.

나의 콩국수 한상

 점심 설거지를 마치고 일을 하고 있으려니 늘상과 같은, 그러나 조금 더 생산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내가 없으니 허전하고 심심했다. 내가 클라이밍을 하러 하루쯤 집을 비우면 아내의 모습도 비슷하다. 그가 일탈을 하고, 특별한 일을 하면 좋을 텐데, 그는 집을 더 깨끗하게 치워놓고, 뭐 하나라도 더 만들어내고, 그렇게 일상에 집중을 한다. 부부라는 관계의 본질은 둘이 함께하는 시간과 일상을 더 소중하게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뭐라도 내 멋대로의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을 나서, 차에 크래시패드를 싣고, 오후 해가 슬슬 넘어감에도 여전히 덥디 더운 스토니 포인트로 향했다. 바위들은 아직 뜨거웠지만, 언제나 그 날카롭고 까끌까끌한 감촉은 나에게 생기와 위안을 주었다. 너무 더워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해 질 녘 바위가 식어갈 때쯤 몇 년간 시도했던 문제 하나를 끝내고 깔끔하게 집에 돌아오기로 했다. 

 슬슬 배가 고파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 아내가 무쳐놓고 간 나물과 어제 먹다 남은 미역국 생각이 났다. 예전엔 그렇게 싫어하던 가지 나물이 이젠 어찌나 그렇게 맛있는지, 그 생각에 벌써 침이 났다. 아내는 분명 파를 송송 올린 계란 프라이를 올려서 먹었을 것이었다. 그는 이제 주물팬의 마스터가 되어 계란 프라이도 거기에 구워 내지만, 나는 그냥 코팅 팬을 사용했다. 콩나물무침, 가지나물, 미역국, 계란 프라이, 김치. 참나, 나의 입맛도 늙어만 가는데, 이것이 왠지 싫지 않다. 


 코로나 사태로 정말 유래 없이 우리 가족이 같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 덕분에 새침데기 구름이와도 코를 맞댈 정도로 친해지고, 보리는 어리광쟁이가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일 년 중 반 정도를 떨어져 장거리 연애를 한 우리에게, 이 정도로 항상 같이 있을 수 있게 된 이 시간을 아마 우리는 언젠가 많이 그리워할 것이다. 2박 3일 캠핑 갔다고 아내가 보고 싶어 진 것만 봐도 이미 그렇다. 내일 그가 돌아오면 같이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