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 쫄깃함과 구수함
아폴로 버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외식을 해 본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다 지난 주말, 나와 아내가 뜬금없이 집밥이 아닌 음식을 먹게 된 것은 딱히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고, 새벽같이 일어나 레드 락 캐년 (Red Rock Canyon, Las Vegas, NV)에 향하던 길, 클라이밍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가자는 쥬드의 제안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제법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그는 마치 세상의 이치의 일부를 깨달은듯한, 누구에게나 베풀 줄 아는, 마치 수도승과 같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 쿵푸를 오래 한 덕분인지 앉아있는 자세가 참 곧았고, 요즘은 원래 새벽 다섯 시쯤 요가 수련을 하던 것을 네 시쯤으로 앞당겨 하루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런 그가 베가스 (Las Vegas) 살던 시절부터 드나들었다던, 무려 처음으로 알바를 해 보았다던, 20년 전통의 정통 중국 음식점에 가자고 하니 왠지 가봐야 할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작년 중국에서 새로운 미식의 세계를 경험한 뒤, 언제쯤 다시 중국 본토의 음식을 먹게 될 수 있을까 마음앓이를 하던 우리였다. 그러나 LA에서 '정통' 한국식 요리를 찾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중국 식당 중 우리가 기억하는 맛을 찾아가는 일은 막막하기만 했으니, 현자이자 미식가인 쥬드 찬스를 쓸 수 있는 이때가 바로 기회였던 것이다.
복서 메이웨더가 운영한다는 복싱 짐 건너편, 내가 가지고 있는 아주 얄팍한 한자 지식에 따르면 '운남 어쩌고'라고 큼지막 하게 쓰여 있는 문을 당기자마자 다양한 향신료의 향이 배어 있는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벽에 붙어 있는 메뉴는 중국어로만 쓰여 있었고, 첫 손님인 우리 뒤로 들어온 이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중국 사람들뿐이었다. 쥬드는 카운터 앞에 서서 나로선 대체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 전채 요리/반찬을 들여다보더니 아주 유창하게 중국어로 세 종류를 주문하고, 각자를 위한 국수 요리, 그리고 같이 나눠 먹을 곱창 볶음을 주문했다. 빨갛게 양념된 전채 요리를 들여다보며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하나는 돼지 위, 하나는 소 혀, 그리고 나머지는 소 힘줄 육포라고 했다.
불현듯 20대 초반, 냉면집 서북 면옥에서 우설이 뭔지도 모르고 시켜놓고 잘 먹다가 이것이 소 혀라는 것을 알고 도저히 먹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 기억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근처를 살짝 훑고 갔을 뿐, 소 혀를 집은 나의 젓가락은 강한 향신료 냄새에 이미 스멀스멀 침으로 차오르는 입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찌나 야들야들하고 쫄깃하면서 화자오의 아리면서도 플로럴한 향과 잘 어우러지던지. 이제는 특수 부위에 대한 이해가 전보다는 생겼지만 여전히 먹어본 적 없는 돼지 위, 0.5초쯤 고민했지만 입에 넣어 보니 마찬가지로 아주 훌륭했다. 열심히 저작 작용을 하는 위의 움직임이 느껴질 정도로 아주 탄력 있고 쫄깃했다. 너무나 맛있어서 헛웃음이 났다. 고기라고 하면 삼겹살, 부채살밖에 모르고 자라 특수 부위가 굉장히 낯설었던 내가 이렇게 다양한 부위들을 즐길 수 있게 되다니.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긍정적인 기억을 쌓아 가면서, 내 세계가 점점 더 여러 방면으로 넓어지면서, 되려 어렸을 때보다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를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체 연료 위에 놓인 스텐 팬 안에 계속해서 지글지글 볶아지고 있는 돼지 곱창 볶음이 나왔을 때엔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알싸한 부추, 파, 향신료와 쌉쌀한 중국 셀러리, 고소한 숙주, 그리고 파괴적인 돼지 곱창이 볶아지는 소리와 냄새. 내게 익숙한 곱창의 기다란 원통 모양이나 막창의 튜브 모양과는 달리 길게 사선으로 썰려 있는 이 곱창을 한 입 베어 무니 바삭, 하는 소리가 났다. 볶기 전에 이미 한 번 튀긴 것이었다. 세상에... 달콤하고 얼얼한 양념은 자칫 느껴질 수 있는 느끼함을 잡아주었고, 튀김의 바삭함과 곱창 자체의 쫄깃함의 조화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내장 특유의 고소함과 쌉싸름함은 그저 짜릿할 따름이었다. 역시 중국 향신료답게 처음엔 별로 안 매운 것 같으면서도 먹으면 먹을수록 화끈함이 올라왔다. 게다가 철판 밑에서 느긋하게 타고 있는 고체 연료 덕에 곱창도, 야채도 여전히 갓 나온 것처럼 뜨거워, 웅크리고 가게에 들어온 우리는 겉옷을 벗고 그저 땀을 흘리고 있었다. 20년 넘게 운영 및 조리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장 아저씨는 쿨하게 카운터에 앉아 간간히 우리에게 눈길을 주었다.
문득 생각이 들어 나처럼 감탄을 하면서 반찬과 국수와 곱창을 먹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이번 주 곱창을 두 번이나 먹네!'
고작 이틀 전에 아내가 소곱창을 열심히 손질하고 구워 신나게 먹었던 터였다. 호화로운 한 주가 아닐 수 없다.
이른 오후 한인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면 늘 조금씩 두근거리는 마음을 품게 된다. 5파운드에 99센트인 양파나 8단에 99센트인 파, 혹은 2파운드에 99센트인 사과 같은 생필품 외에 우연히 상태가 좋거나 가격이 저렴한 식재료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나 그것이 메인 식재료라면, 계획에 없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 그 신선함에 괜히 신이 난다. 예를 들자면 주로 살은 많지 않고 애매한 갈비뼈 조각들로 이루어져 육수 내는데나 쓰는 파운드당 79센트짜리 '막갈비'가 가끔은 파운드당 $12.99짜리 갈빗살처럼 살점도 많이 붙어 있고 지방과의 비율도 좋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한 봉지 사와 늘 자극적이고 짜릿한 매운 갈비찜을 해 먹는다. 때로는 아주 탱탱해 보이는 새우가 싸게 팔고 있으면 팟타이를 해 먹거나, 어쩌다 상태 좋은 쭈꾸미가 보이면 그 날 저녁은 갑자기 분위기가 포장마차다. 아내가 처음으로 집에서 막창 구이를 해 보게 된 것도 중국 마트에 갔더니 마침 아주 저렴하게 할인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날에도 딱히 특별히 장을 보아야 할 것은 없었다. 다만 COVID-19 상황이 다시 악화되려는 조짐에 따라 경제 제재도 또다시 강화될 예정이었기에 꼭 필요한 것들 -- 역시나 사과, 양파, 미역 등등 -- 을 사다 놓으려는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재밌는 발견, 멋진 발견을 하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치 킥보드를 타는 것 마냥 한 발은 카트 아랫부분에 두고, 한 발은 힘차게 땅을 디뎌 고기 코너 쪽으로 스르륵 미끄러져 갔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바퀴 달린 것을 타는 일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 것일까. '오늘은 뭐가 있으려나' 보는데, 마침 담당자분이 정육 작업대에서 방금 막 손질을 마친 제품들을 트레이에 잔뜩 싣고 나와 냉동고에 하나씩 진열해 놓고 계셨다. 뭔가 보았더니 바로 곱창이 아니었겠는가. 무려 마침 손질된, 얼지도 않은 완벽한 생곱창이. 주로 꽝꽝 얼어 성에와 함께 탁한 붉은색, 갈색빛을 띠고 있는 곱창과는 달리 이 생곱창은 아주 엷은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통을 살짝 흔들면 탱글거리며 움직였고, 표면에는 광택이 났다. 너무나 신선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곱창을 섣불리 제안할 수는 없는 것이, 곱창은 아내에게 있어 '역시 사 먹는 것이 나은' 음식들 중 세 손가락, 아니 두 손가락 중 하나에 꼽히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순대도 집에서 만드는 그에게 사실 그 외에 또 그런 것이 무엇이 있나 하면 잘 모르겠다. 마카롱?
이전 막창에 대한 기억을 담은 글에도 남겼지만, 내장 손질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일단 재료의 상태에 따라 일의 번거로움과 괴로움이 천차만별이라 사 온 막창의 신선도가 높지 않을 때에는 걷어낼 것도 많고, 무엇보다 냄새가 아주 심하다. 그 미끌미끌하고 이상한 모양의 것을 잘 씻고, 뒤집어 또 씻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과한 지방 덩어리들을 다 잘라 내고, 밑간 하고, 양념에 재우고, 굽고... 물론 아내가 인고의 시간 끝에 쟁취하는 노릇노릇하고 쫄깃쫄깃하고 달콤하고 구수한 막창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해서, 주기적으로 한 번씩 그 노력과 시간을 들일 만한 메뉴로 자리 잡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곱창은 막창보다 한 술 더 뜬다. 속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에 집중하면 되는 막창과는 달리, 맛있는 부분인 곱은 잘 유지하면서 불순물은 충분히 제거하는 어려운 최적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곤 이후 과정에서 곱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끝을 실로 묶은 다음 소주, 생강 등에 담가 냄새를 제거하고, 키위 등으로 연육을 한 다음, 마저 냄새를 제거하고 질기지 않게 하기 위해 삶는다. 그러고 나면 굽건, 전골에 넣어 끓이건 조리를 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처음 하는 일은 어렵겠지만, 나는 유난히도 '처음'에 약한 편이다. '모든지 잘한다'는 주변의 기대 속에서 자라온 탓인지, 실제로 안 해본 것은 정말 못 하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커다란 부담과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학교 다닐 적엔 '공부'도 잘했고, 아니, '시험'을 잘 쳤고, 피아노도 그럭저럭 잘 쳤고, 야구공도 잘 던졌고, 나름 예쁜 사진들도 찍을 줄 알았고 그랬으니 나는 내가 안 해본 많은 것들도 다 잘해야만 한다는, 혹은 잘할 것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새디스틱하며 나르시시스틱한 나 자신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나 자신에게 많이 관대해져서, '처음 하는 일인데 당연히 잘할 리가 없지, ' 하고 생각을 한다. 춤의 'ㅊ'도 모르는 나는 음악을 나름 오래 공부한 것 치고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것을 '잘할' 수 없는 것이 신경쓰였다. 그러다 최근 어쩌다 친구에게 '닌텐도 스위치' 콘솔과 '저스트 댄스' 게임 칩을 빌려왔다. 아내가 본인 친구들이랑 해 봤는데 너무 웃기고 재밌다며, 당신네들의 춤솜씨를 영상으로 담아 내게 보여주면 나도 같이 한참 웃곤 했다. 그러나 내가 직접 하기엔 완전 젬병일 것이 분명해서 처음에는 할 맘이 나지 않았다. 대신 아내에게 하라고 셋업을 해 주고 지켜만 볼 심산이었는데, 처음으로 튼 곡이 왠지 너무 흥이 나고, 안무는 '병맛'같고, 웃기면서도 미묘하게 멋진 것이었다. Little Big의 Skibidi라는 노래였다. 세상에, 에라 모르겠다 싶어 나도 아내와 같이 몸을 움직였다. 누군가 언젠가 내가 클라이밍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춤을 추는 것 같다'라고 하는 말에 우쭐한 적도 있었는데, 그렇게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 수가 없었다. 왜 나는 계속 화면의 형님과 반대 팔다리를 움직이고 있는지, 왜 반대 방향으로 도저히 바꿀 수가 없는지. 정말 멍청이가 된 것 같아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그 이후로 사실 춤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가 기록해 둔 영상을 보면, 내가 몸을 움직이면서 이렇게 배 아프게 웃어본 적이 있었나 싶다.
그런가 하면 아내는 '처음'에도 강한 편이다. 처음으로 풀을 기를 때도, 처음으로 라탄으로 만들기를 할 때에도, 처음으로 나무를 깎아 포크와 나이프를 만들었을 때에도, 처음으로 자수를 놓았을 때에도, 처음으로 자전거를 탈 때에도, 처음으로 순대를 만들었을 때에도, 처음으로 운전을 할 때에도, 처음으로 빵과 과자를 구웠을 때에도 이 사람은 뭔 재능이 이렇게 많나 질투의 감정이 들 정도로 처음부터 뚝딱 잘 해내곤 했다. 날아오는 공을 무서워하는 것 빼곤 거의 모든 것을 잘하는 것 같다.
그런 그가 거의 처음으로 결과물에 속상해했던 것이 바로 처음으로 곱창 구이를 준비했을 때였다. 막창 손질을 해 본 경험이 덕분일까, 비교적 순조롭게 불순물과 지방을 걷어내었다. 곱창의 상태가 나쁘지 않았던 덕에 냄새도 많이 나지 않았다. 다양한 레시피를 둘러보면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곱창의 질겅거리는 식감을 줄이기 위한 연육을 하고 냄새를 제거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 제법 긴 시간 동안 삶는 과정이 필요했다.
씻어낸 곱창의 끝을 잘 묶고 밥솥에 쪄 낸지 한두 시간, 뚜껑을 열어본 아내는 말이 없었다. 힘들게 손질한 곱창의 대부분이 사라진 것이었다. 생각보다 질기지 않았는지, 과하게 녹은 껍질 사이로 곱들이 빠져나가 진한 국물만 남기고 쪼그라들어 있었다. 처음으로 집에서 준비한 곱창, 곱창이면 역시 구이지, 라는 생각에 전골을 준비할 수도 없었던 그때, 한껏 양이 쪼그라든 곱창을 그래도 주물 판에 구워서 먹었다. 물론 굉장히 맛있었다. 열심히 손질해 삶아낸 만큼, 잡내 없이 고소함 가득한 곱의 맛이 좋았으며 전혀 질기지 않은 식감이 좋았다. 삶은 물에 남아있던 곱도 최대한 구출해 밥에 비벼 먹으니 역시나 아주 맛있었다. 다만 아내가 그리던, 탱탱한 내장 안에 곱이 탄탄히 차 있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곱창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너무나 실망하고 낙담한 그의 모습에 나는 차마 이를 사진으로 기록할 겨를도 없었다. 물론 지금이야 웃으면서 그때 사진 한 장쯤 찍어둘 걸, 얘기하곤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아내가 아니었다. 어쨌든 우리는 곱창을 좋아하고, 그렇다고 사 먹기엔 너무 비싸고, 한인 마트나 중국 마트에 갈 때면 때때로 상태 좋은 곱창이 보일 때면 늘 눈길이 가는 것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그 새 막창도 몇 번 더 먹고, 첫 곱창의 어이없는 기억이 조금씩 추억으로 변해갈 무렵 아내는 다시 곱창 요리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다만 처음과는 달리 곱이 삶을 때 밖으로 빠져나와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도록 매콤하게 끓여낸 전골 형태로.
안타깝게도 사 온 곱창의 상태가 이전보다 좋지 않았다. 주방에서 아내가 손질하고 있는 곱창의 냄새가 마루 반대편 내 책상에까지 전해졌다. 쿰쿰하다 못해 살짝 코가 아려오는 냄새였다. 바로 앞에서 그 곱창을 손질하고 있음에 안타까운 아내는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아내는 냉동실에 잘 돌돌 말려 있는 순대도 추가하고, 수많은 야채들을 더해 전골을 준비하였다. 매콤한 국물에 퍼진 구수한 곱의 향, 시원하고 담백한 채향, 그리고 손질할 때 강하게 느껴졌던 내장의 향은 오히려 국물을 진하고 깊게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쫄깃한 곱창을 씹을 때마다 그 원통 안에 담긴 곱과 국물의 뜨거움, 감칠맛, 얼큰함이 입 안으로 뿜어져 나왔다. 소주를 부르는 한 상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갓 나와 막 냉동고에 옮겨져 아직 탱글탱글 흔들리는 생곱창을 바라보며 고민을 했다. 괜히 한숨이 나왔다. 다시 그 고되고 도박 같은 과정을 감수할 것인가. 아내는 용감하게 한 팩을 집어 카트에 담았다.
'이렇게 상태 좋은 걸 언제 또 볼 수 있겠어. 이렇게 맛있는 거 먹고라도 스트레스 풀어야지. 잘 되면 다음에는 생곱창 언제 진열되는지 물어보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3주 정도 다시 열었던 클라이밍 짐이 COVID-19 상황에 따라 다시 닫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위축되고 막막한 마음이 들었던 우리였다. 열었다 닫게 된 것이 벌써 두 번째, 한 번은 그러려니 하지만, 두 번은 알아도 왠지 마음이 조금은 꺾이는 것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는 곱창 손질을 시작했다. 식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아내는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도 별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신선하긴 어지간히 신선한 모양이었다. 그런 만큼 냄새 제거를 위해 오래 삶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다만 삶지 않았을 때 질길 수도 있는 식감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곱창의 신선함을 믿고, 그리고 혹시나 질기거든 하루라도 덜 늙었을 때, 아직 온전한 이빨을 가졌을 때, 바로 지금 그런 것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는 결론에 다다라 아예 삶지 않고, 바로 초벌구이를 한 후 인덕션 위에서 2차로 구워내기로 했다.
초벌구이를 하는 동안 이미 곱창에서 제법 물이 나와, 자체적으로 살짝 쪄지는 느낌이었다. 삶지 않은 덕에 곱창 벽이 많이 터지지 않았고, 손실되는 곱도 많이 없었다. 별 냄새가 나지 않던 곱창은 익기 시작하면서 고소한 냄새를 온 집안에 풍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되었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곱창이 익어가는 소리가 영롱했다. 바닥 부분에 그을음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지만, 역시 곱창은 노릇노릇, 바삭바삭, 살짝 탄 맛이 나야 제 맛인 것 같다. 내가 여든일곱이 되면 서른 살 때 그 곱창만 안 그을려 먹었으면...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인류 문명이 그때까지 버틸지조차 요즘은 잘 모르겠다.
곱창이 익어가며 나오는 기름에 잔뜩 올려놓은 야채도 같이 지글지글 익어갔다. 특히나 기름 한껏 머금고 튀겨지듯 구워진 감자는 정말로 별미였다. 분명히 많이 올렸던것 같은데 봐도 봐도 감자가 없었다.
초벌구이를 하며 나온 곱은 잘 모아두었다가 나머지와 함께 볶아 먹었다. '곱'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을 때엔 조금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지금은 반대로 소는 어떤 소화 작용을 거치길래 이런 맛있는 것을 품고 있게 되는지 늘 신기하곤 하다.
삶지 않았음에도 전혀 질기지 않은 것이, 역시나 얼지 않았던 녀석을 가져왔던 것이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잘 되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했을 아내는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는지 같이 신나게 젓가락질을 했다. 노릇노릇하고 쫄깃한 원통 안엔 구수한 곱이 가득했다.
아내와 내가 연애하던 때부터 다니던 곱창집 <황주집>, 특히 수유 본점에는 귀가 따갑도록 추운 겨울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 가며 먹곤 했다. 그 안은 얼마나 북적북적하고 곱창이 익어가는 소리와 냄새로 가득하던지. 그 허름한 작은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입고 있던 두터운 외투를 비닐봉지에 담아 의자 뚜껑을 열어 그 안에 넣어 놓았다. 초벌을 한 곱창과 대창, 야채들이 올라간 철판이 우리 앞에 놓여 익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서비스로 생 간과 천엽이 나왔다. 얼마나 신선한지 색도 선명하고, 아주 탄탄하며,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한 번 먹어볼 수는 있었으나 잘 먹기는 어려웠다. 대신 아내의 부모님이 소주와 함께 신나게 드시곤 했다. 1인분에 3만 원이 넘는 곱창과 대창, 사실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그처럼 신선한 재료를 구해 깨끗하면서도 곱이 가득하게 손질을 하고, 맛있게 구워내는 노력과 노하우를 생각하면 그 정도 가격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생각해보니 황주집에서는 철판 구석에 식빵 조각이 놓여 있었다. 곱창과 대창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기름을 빨아들이기 위함이었다. 아내의 섬세한 손길 덕에 우리는 불순물도, 지방도 거의 없는, 담백하고 고소한 본연의 맛으로 가득 찬 곱창을 먹을 수 있었지만, 다음에는 지방을 조금 더 남겨서 더 지글지글하고 파괴적인 맛을 즐겨보기로 했다.
매콤하게 부추까지 넣고 볶으니 영락없는 곱창집 냄새가 집을 가득 채웠다. 문득 생각을 하다가 몇 년 전 내 생일날 한인타운, 연예인 강호동 씨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아가씨 곱창>에서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아내에게 물었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곱창 본연의 맛보다는 강한 양념 맛이 도드라지는 것이 큰 맘먹고 100불을 지출한 것 치고는 아쉬웠었다.
'<황주집>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아가씨 곱창>보다 훨씬 맛있지 않아?'
아내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응, 더 맛있는 것 같아.'
앞으로 곱창이 먹고 싶으면 아내에게 현금으로 100불을 건네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마루에는 아직도 공기에 곱창 냄새가 배어 있어 배가 고파졌다. 이다음 언젠가 집에서 대창을 구워 먹게 될 수도 있을까. 그 무시무시하게 달달한, 입에서 톡톡 터지는 지방 방울들. 그것이야 말로 수명을 깎아먹는 녀석인데 그만큼 원초적으로 맛있는 것이 대창이다. 막창, 곱창으로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지만, 또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막 손질을 끝낸, 탱글거리는 대창과 마주한다면 과연 우리가 그것을 사지 않고 넘길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장을 보러 가는 일은 늘 두근거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