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고 갈까, 용기가 필요해

텅 빈 바나나 우유 한 통, 너였어.

by 비니의화원

저녁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에 안정감 있게 놓인 바나나 우유와 마주 섰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바닥에 우유 한 방울 없이 깨끗하게 비워 있다.


평생 다섯 번도 먹지 않을 바나나 우유를

이렇게나 맛있게 먹는 이가 나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이 산다니

나와 얼마나 다른 사람일까 잠시 생각하다

고민에 빠졌다.


데리고 가서 껍질은 일반 쓰레기에 버리고

통은 헹궈서 플라스틱 통에 넣어

우리 집에 모인 채로 버릴 날을 기다리는 녀석들과

며칠 합숙을 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제 곧 내려야 한다.

아무도 타지 않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엘리베이터

직행으로 내가 사는 30층을 향하고 있다.


빈 바나나 우유통만 노려보다

그냥 두고 내린다.

마신 분이 와서 데려가길 바라지만

그랬다면 예쁘게 놓고 가지 않았을 테지.

미화 여사님이 내일 아침 치우길 바라지만

청소도구함도 버거운데 이 쓰레기까지.

이도 저도 마음에 안 든다.


닫히려는 문을 향해 몸을 돌리고

버튼을 누르고 다시 열린 문 사이로 몸을 돌려

우리 집 녀석들과 합숙을 시키기로 마음먹는다.


텃새해도 어쩔 수 없다.

아낌없이 베푼 이 녀석의 잘못이다.

뭘 그렇게 맛있게 만들어서

집에 다 가기도 전에 비우게 했는지 원.

조금만 덜 맛있었어도 집까지 갔을 텐데.

맛있는 게 죄가 되는, 텃새는 감수해라.


<사회실험 관찰 카메라> 영상을 종종 보게 된다.

곤란한 상황이나 불편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주저하지 않고 도움의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고 았노라면

나라면?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현명하게 지혜롭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나보다 더 좋은 해결책을 주는 누군가에게

미루면서 안타까운 마음만을 안고 지나칠 수도 있다.

나라면.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낼 수 있는 만큼

손 내미는 이들의 용기가

감동이다.


빈 바나나 우유 하나에도 망설이는 나를 보면서

누군가를 향해 망설임 없이 손 내민

많은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바나나 우유 한 병을 들고 온

나의 소박한 용기,

낼 수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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