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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노 Dec 29. 2017

서울의 밤

전 세계 어느 도시든 낮과 밤의 모습은 다르다. 1년 전 무작정 홀로 떠났던 파라의 낮과 밤이 그랬고 런던, 로마 그리고 리스본까지 모두 저마다 낮과 밤의 다른 온도가 느껴졌다. 낭만이 있었고, 차분했고 아름다웠으며 연인들의 사랑으로 가득했다. 특히 밤이 낮보다 아름다웠던 것은 그들이 자랑하는 오래되고도 웅장한 건축물 때문이 아닐까. 그들이 누리고 있는 밤, 그 안에 그들의 모습은 화려함보다는 차분함이었다. 


서울. 낮에는 '회색 도시'로 불리는, 무표정의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다.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누군가는 이러한 서울의 낮이 아름답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서울은 어느 때보다도 밤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아니, 밤이 화려한 도시라고 하는 게 더 좋겠다. 무엇보다 서울의 밤이 아름답고 화려한 이유는 반짝이는 한강도 고층건물들의 스카이라인도 아닌 밤하늘의 별처럼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때문이라.


이 밤 갈 곳 없는 청춘들 모두 모여서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 춤추네. 그 어떤 말로도 그 어떤 위로도 우울한 마음을 달랠 순 없지만 함께란 이유로 서로에 기대어 잠드네. 

                                                                                       밴드 몽구스의 '서울의 밤 청춘의 밤' 中


앞서 말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서울의 밤은 약간 독특하다. 같은 시간의 밤을 그들에 비해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길게 누리고 있다. 밤이 되면 홍대, 이태원, 강남의 거리에 차 있던 무표정의 사람들은 사라지고 곳곳에 웃는 이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로도 서울의 밤거리는 빛나지만 어쩌면 사람들의 패션이 서울의 밤을 가장 밝게 빛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차들이 끊이지 않는 거리를 밝히는 것은 그 흔한 가로등이 아닌 화려한 메이크업과 헤어 그리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이다. 모두가 각자의 밤을 자랑하듯 혹은 부쩍 추워진 날씨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울의 밤거리는 다양한 색으로 가득하다. 동일한 온도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듯, 영하의 날씨에도 배를 드러내고 재킷을 걸치지 않은 사람도 여럿 보인다. 단순한 하늘색의 변화가 사람들에게 무언의 힘을 전달해주는 것일지도. 서울의 밤이 주는 매력은 바로 이것에 있다. 수트 혹은 유니폼을 입고 정신없는 각자의 하루를 보낸 후, 휘황찬란한 퍼 재킷부터 짙은 아이라인, 그리고 듬뿍 바른 포마드까지. 1151번 막차를 타고 지나치는 강남역 정류장에, 이태원 거리와 클럽 안에, 그리고 저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과 서울의 밤을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밤을 보내고 있는 기분이다.


누군가는 서울의 밤에 대해 텅 빈 도시라 느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신없고 복잡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막차 시간이 다가올수록 버스 정류장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엉켜 있고 낮에 북적하던 곳이 숨 막히게 고요하게 되는 곳도 있으니.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 어떤 도시보다 사람들이 빛을 내는 곳 역시 서울이다. 거리를 청소하는 분들의 유니폼도, 불이 꺼지지 않는 고층 빌딩들 속 사람들도, 그리고 거리에 약속을 즐기는 사람들도 빛을 낸다. 오늘도 잠들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거리에는 각자의 겨울 그리고 연말의 밤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지루하고 따분했던 낮을 뒤로하고 약속을 위해 한껏 꾸민 사람들로 가득한 이태원의 거리를 보고 있는 지금, 자연스레 작년 유럽 여행에서의 차분하고 조용했던 밤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기억 속 무섭도록 조용했던 거리에서 느꼈던 밤과 지금의 밤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서울의 특별하고도 잠 못 드는 밤은 오늘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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