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는 부지런히 보따리 싸고 풀기 바빴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평일엔 시골에서 농사짓고 주말엔 도시로 돌아와 일을 했다. 마라톤을 끝내고 지금은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 저녁이면 몇 시가 되었건 구애받지 않고 졸리면 침대로 들어가 스르르 잠이 든다. 저녁 7시에 취침에 들어갈 때도 있다.
대체로 이른 새벽 눈이 떠진다. 현관문 열고 신문을 들고 들어온다. 신문을 읽다가 졸음이 오면 소파에서 그대로 다시 잠깐 눈을 감는다. 남편도 일어나면 그때부터 함께 운동을 한다. 그리곤 간단한 아침 식사가 이어진다. 아침에 듣기 좋은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고 서다. 그렇게 배경 음악을 깔아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다 보면 마치 어느 카페에 와있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아침을 열고 그때부터 오후 산책을 가기 전까지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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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독서도 하고 브런치에 들어가 푹 빠져 보기도 한다. 그동안은 브런치에서 날아온 "작가님의 글을 본 지 오래되었다"는 메시지를 자주 접했다. 그런데 요즘은 브런치 작가님들과 소통도 하며 재미를 붙였다. 수상작을 몰아서 읽어보는 재미도 괜찮다. 브런치에 글 잘 쓰는 분들이 많음을 새삼 느낀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오후 산책에 나설 시간이다. 산책 후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함께 영화 한 편을 감상하거나 스포츠 경기를 보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해가 짧은 겨울이라 하루가 한 주가 한 달이 더 짧게 느껴진다. 여행이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요즘 우리 부부의 평일 일상 루틴이다. 주말엔 함께 일한다. 소통 부재를 낳은 코로나 시국을 보냈으니 다른 사람을 만날 일도 없었다. 거의 24시간을 둘이서 붙어살았다. 연애도 신혼 시절도 아닌 결혼 30년 차가 되어 가는 부부가 말이다. 숨이 막힐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부부는 오히려 그 반대다. 얼마나 다행인가 혼자가 아닌 둘이 같이 놀 수 있어서. 둘 다 걷기 여행을 좋아해 여행 코드도 맞다. 둘이 나서도 걸을 땐 자연스럽게 혼자인 듯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걷기도 한다. 익숙해서 편한 사람과 함께 하니 먹고 자는 문제도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없다. 여행을 나서면 여행지기가 된다.
그렇다고 다툼 없이 살아가는 잉꼬부부는 절대 아니다. 사소한 일로 박 터지게 싸울 때도 많다.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뭐 때문에 싸웠는지 싸웠다는 그 자체를 금방 잊어버린다. 돌이켜 보면 대부분 같이 일하며 힘든 순간에 그랬다. 너그러운 마음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도 우선 내 심신이 편해야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어쨌든 우리 두 사람이 요즘 동시에 느끼는 감정이 있다. 우리가 지금 자유롭고 느릿하게 누리는 이 시간들이 어쩌면 우리 인생의 황금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둘 다 특별히 아프지 않고 아직 두 다리의 힘은 남아 있다. 아이들도 결혼해 가정을 이룬 건 아니지만 독립해 각자의 위치에서 별 탈없이 잘 지낸다. 주말이면 네 가족이 모여 맛난 것도 해 먹으며 즐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20년을 살았다. 아이들 키우며 주거 환경으로는 내가 사는 동네가 최고라고 여기며...,
그렇게 정든 곳에서 이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시골살이를 준비하며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큰 만큼 내 마음속에 불안함도 수시로 들락인다. 계획대로 되는 건 없고 모든 게 불투명하다. 그래서 그토록 오래 살았던 이 집과 동네가 점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째깍째깍 앞으로 내달리는 시곗바늘을 멈추어 세우고 싶은 날들이다. 왠지 봄이 오는 게 반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