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사이를 걷던 사람, 사실은 임장 중이었습니다
서울의 봄은 언제나 벚꽃으로 시작된다. 하얗게 핀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길거리는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꽃을 찍지 않았다. 내 눈은 꽃잎보다 아파트 단지를 향해 있었다. 누군가는 “와, 예쁘다”라며 감탄했지만, 나는 “이 동네 전세가는 얼마일까”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봄꽃을 배경으로 산책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나는 투자 공부 중이었다.
제주에 살면서 서울 아파트를 본다는 건 사실상 작은 원정이었다. 서울·경기·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임장을 하루에 몇 군데씩 나눠 다닐 수 있지만, 나는 비행기를 타고 올라와 한 번에 몰아쳐야 했다. ‘생각하면 바로 실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인 나는 결국 일주일 동안 깨 있는 시간 내내 걷고 또 걸었다. 발바닥은 화끈거렸고, 무릎은 나중에 파스를 붙여야 할 만큼 버텨내지 못했다. 무릎보호대를 차고, 최대한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어도 그때뿐이었다. 노량진 재개발 구역의 험한 언덕길, 흑석동의 비탈, 관악구까지 집에서 글만 쓰며 운동이라곤 담을 쌓았던 내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결혼 전까지 30년을 수도권에서 살았다. 그런데도 ‘서울을 부동산 시각으로 본다’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출퇴근길에 무심히 지나치던 역이 이제는 “이 동네 입지는 어떨까?”라는 질문으로 다가왔고, 평소엔 관심조차 없던 골목길이 이번엔 매물로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깨달았다. 같은 도시라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도시가 된다는 걸.
문제는 내가 심각한 길치라는 점이었다. 스마트폰 지도를 켜고도 길을 헤맸다. 파란 점이 내가 아니고, 자꾸만 엉뚱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지도 앱을 들여다보며 분명 오른쪽이라 생각했는데, 돌아서면 왼쪽이었고, 그렇게 같은 블록을 몇 번씩 빙빙 도는 날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 내가 이래서 블로거인가 보다. 글 쓰는 데는 길치가 상관없잖아” 하고 혼자 웃기도 했다.
중개사무소에 들어서면 으레 받는 질문이 있었다. “제주에서 일부러 오셨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민망하게 웃으며 “네, 일부러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 자신도 신기했다.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하루 종일 동네를 걷고, 낯선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는 내가 어딘가 웃기기도 했으니까. 그런데도 중개사들은 내 열정에 조금은 진지해지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열정은 대단하시네요”라는 말이 빈말 같지 않게 들렸다.
임장이 끝나면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엑셀. 다녀온 아파트의 시세를 정리하고, 전세와 매매 차이를 계산하고, 급지별 입지를 분석했다. ‘내가 블로거였지, 데이터 분석가였나?’ 싶을 정도로, 노트북 앞에서 수치를 채워 넣으며 밤을 새우곤 했다. 숫자와 씨름하다 보면 눈은 충혈되고 머리는 지끈거렸지만, 이상하게도 그 과정이 점점 익숙해졌다. 마치 글을 쓰면서도 하루하루 축적되는 원고들이 쌓이듯, 숫자 역시 쌓이면서 서서히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글만 쓰던 사람이 아니라, 발로 도시를 배우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낯선 동네를 걷고, 엑셀에 수치를 입력하고, 중개사와 대화를 나누고, 강의장에서 자산가들의 말을 받아 적는 나를 보면서 “아, 내가 지금은 글이 아니라 경험으로 이야기를 쓰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특히 모임에서 들었던 짧지만 강한 문장 하나는 오래 남았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어요. 실행이 타이밍이에요.”
그 말이 내 안에 깊이 박혔다. 블로그도 매일 쓰는 사람이 결국 성장하는 것처럼, 투자는 실행하는 사람이 결국 한 발 앞서 나간다.
벚꽃은 여전히 예뻤다. 하지만 내 기억 속 4월의 서울은 꽃잎보다는 무릎 통증과 지도 앱, 그리고 수십 개의 엑셀 파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발품은 결국 나를 한 곳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계약서를 앞에 두고 손이 떨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그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풀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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