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냥이 Dec 23. 2022

풍동 도서관 전시 마지막날

서점 대표님과 하는 두 번째 식사





일산의 독립서점 <너의 작업실>에서 전시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근처 풍동도서관에서의 전시가 정해졌다. 고양시에서 진행하는 <동네책방을 담다> 전시에 내 책방 그림들이 함께 걸리게 된 것이다.

10 말쯤 그림들을 철수하러 서점에  예정이었는데,   그림들이    일산에 머무르게 되었다.

   하나가 도서관에  그림과 책이 함께 전시되는 거였는데,  꿈이 절반은 이뤄졌다.

서점에서 도서관으로의 이동 설치는 너의 작업실 대표님께서  해주셔서  멀리서 사진만 받아보았다.

 그림들인데 이렇게 이동설치를 해주시는 게 죄송하고 감사하다. 다음 전시 때문에 11월 25일 전에는 철수를 해야 했는데 그마저도 오기 힘들테니 택배로 보내주시겠다고 한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기에 편하게 택배로 받아봐도 되지 않을까 갈등은 되었으나 서점에도, 내 그림을 걸어 준 도서관에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며칠을 고민하다 가는 쪽을 택한다.

갈까 말까 할 때는 역시 가는 쪽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9시 30분.  아이들을 보내고 단골 카페에 들러 텀블러에 커피를 가득 담고 60km를 운전할 채비를 한다.

역시 나는 아아다. 아직 11월이기에 아이스를 고집할 명분은 충분하다.

오늘을 위해  그저께 기름도 가득 채워놨으니 나는 그저 전방주시하고 달리면 된다.

(달리는 과정 이하 생략)

그렇게 풍동도서관에 도착해서 혼자 조용히 철수하고 가는 시나리오를 예상했는데 풍동도서관에 이동 설치를 해주셨던 너의 작업실 대표님이 도서관으로 철수를 도와주러 오셨고,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열댓 점의 내 그림들이 이동식 카드에 차곡차곡 담겼다. 도서관 직원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 대표님의 식사 제안에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덥석 문다. 3달 전엔 하원 시간에 급급해서 쫓기듯 집으로 왔는데 한 번은 길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맛난 김밥과 샌드위치를 포장해서 서점에서 함께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서점에서는 다른 독서 모임이 진행 중이라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덕분에 밤리단길을 제대로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한적한 서점과는 달리 다른 상점, 특히 인스타 감성으로 무장한 식당들엔 벌써 사람들로 가득했다.

일산에 올 일이 있어도 킨텍스나 호수공원 정도만 둘러보았는데, 처음으로 일산의 골목골목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껴본다. 11월 말의 식당 내부는 이미 크리스마스트리와 소품들도 연말 분위기로 충만했고, 나는 올해 이렇게 예쁜 식당은 처음 와본다며 연신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주문한 배추 샐러드와 샌드위치, 리소토가 나오고 대표님은 적막함을 없애려는 듯 프로질문러가 되어 나의 근황과 인생사에 관해 물으신다. 분명 대표님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말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으셨을런지…  그만큼 대표님은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 같은 편안함을 주는 분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너의 작업실에 잠깐 들렀다.

두 달간 내 그림이 전시되었던 공간은 이제 다른 그림책 작가님의 원화와 작업 노트로 가득 채워져 있다.

서점 전시 기간에 어떤 분이 방문해서 나에게 선물을 놓고 가셨다며 책 한 권을 건네주셨다. 친구가 놓고 갔다면 나에게 연락을 했을 테고, 일산에는 지인도 없는데 처음엔 누군지 감이 오지 않았다. 책 한 권 사이에 따뜻한 손 편지를 쓴 엽서 한 장을 곱게 끼워서 포장까지 해서 놓고 가신 분은 브런치에서만 안부를 묻던 ‘은섬’이라는 작가님이셨다. 전시 중에 다녀가셨으면 이미 한 달은 지났을 시점인데 이제야 선물의 존재를 알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일면식 없는 나를 위해 전시를 보러 와주고 전시 전날 손 편지를 써주는 마음을 가진 분이라니. 나는 또 한 번 독립서점을 그리면서 얻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왜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할까 고민한다.

수려하고 위트 있는 문체로 독자를 감탄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솔직하고 담담하게 쓰는 것이다. 그럼 내 글이 읽는 이의 마음에 조금은 닿지 않을까?

서점을 열고, 청소를 하고, 진열을 하고, 독서 모임을 하고, 책을 판매하고, 글을 쓰고, 너무나도 많은 것을 해내는 이들을 보며 나는 아직 서점을 할 용기까지는 없지만,  그들이 하는 수많은 것 중 하나인 글을 쓰는 것이라도 좀 더 꾸준히, 끝까지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포 독립서점 일러스트북에 참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