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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냥이 Aug 03. 2022

길치라도 괜찮아

서판교에 갈 일이 있어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 이야기를 하자면 나의 짧은 경력에도  참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장롱으로 8년쯤 살다 갱신할 때가 다 되어서 본격적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아, 여기서 ‘본격적’이라는 것은 뭐 1시간 거리의 서울 출퇴근 이런 것이 아니라 ‘본격 마트용’을 뜻한다.

어쨌든, 참 할 말도 쓸 말도 많지만, 어디부터 써야 할지 모르는 운전이라는 세계. 오늘의 에피는 내 친구 조귀자(본명 아님 주의)로부터 시작되었다.

서판교로 출퇴근을 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다. 외곽순환도로로 쭉 가다 판교 IC로 빠져서 그다음엔 뭐 네비의 뜻대로 가면 되겠구나 했는데

고속도로가 아닌 빠른 길로 설정이 되어있었는지 이넘의 네비가 나를 고속도로를 태웠다가 시내 도로를 태웠다가 하기 시작했다.

난 그때부터 멘붕이 왔고, 결국 빠져야 할 안양 판교 출구에서 빠져오지 못한 채 직진을 하고야 말았다.

때아닌 침착 맨을 외치며 내가 차에 밀려 떠내려간 곳은 맛집 많기로 유명한 용인 고기리. 그 꼬불꼬불한 맛집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여길 어찌 벗어나야 할까. 때마침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다가 길을 잘못 들어 네비는 또 10분이 늘어났고 이거 참 난리 났다.

그렇게 친구의 금쪽같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나는 도착했고 나의 정신은 이미 피폐해져 있었다​


난 얼마 전 계약하기로 했던 책이 보류(혹은 취소)가 되었던 상태였고 귀자는 같이 글쓰기 수업을 했던 분의 등단으로 여러 감정이 뒤섞인 상태였다.

한참을 우리는 서로의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갔다. 나는 육아의 세계로, 그녀는 직장인의 세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괜찮은 작가'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 편과의 만남은 계속 나아갈 힘을 준다.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서판교로 가는 길에 고기리로 잘못 빠졌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서 친구를 만났듯이 돌고 돌아서 언젠가는 그곳에 도착해 있을 거라 믿는다. ​


(외출을 쓰고 나온 친구와 짧은 만남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또 다른 곳으로 빠져서 도착시간이 20분 추가되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길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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