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가족은 내게 항상 아픈 존재였다.
아빠가 왔다.
몇 주 째 쉬는 날이 없어서 집에를 가지 못했더니
전화로 툴툴 그 회사는 인권도 없냐며 화를 내더니 다음날 두 손에 온갖 반찬을 갖고 온 것이다.
"밍구는?"
"..."
밍구 없이 단둘이 한 공간에 있었던 적이 까마득했다. 밍구의 빈 자리엔 어색한 공기가 퍼져나갔다. 아빠는 그 많은 반찬을 꺼내면서도 한 번도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는데 콩나물을 사고, 손으로 양을 가늠해가며 찰밥을 짓고, 가스 불을 올리고, 멸치를 볶고, 소고기를 졸이는 동안은 내 눈을 떠올렸을까.
"정월 대보름이니까 찰밥은 꼭 먹고 출근해라"
그 답은 마지막에 알게 됐는데, 빈 반찬 통을 두 손 가득 들고 문을 나서면서 내 얼굴을 처음으로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쳐다본 것이다. 그때 나도 아빠와 눈이 처음 마주쳤는데, 눈빛 뒤로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과 마음들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그 아래로는 하얗게 바랜 수염과 깊게 파인 주름, 사실 아빠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 난 아빠에게 무얼 줄 수 있을까. 아빠는 내게 무얼 바라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더 쓸쓸해졌다. 아빠도 나도.
밤늦게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빠의 반찬 냄새가 났다. 30분 전에 저녁을 먹어서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다시 저녁상을 차렸다. 콩나물, 고사리, 산나물, 궁채, 두 종류의 멸치볶음, 오이소박이, 장조림, 그리고 찰밥.
김이 나는 밥을 한 숟갈 입에 넣는 순간, 아까 아빠를 앉게 해서 물 한 잔 주면서 숨이라도 돌리라고 말할 걸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