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차차 육아 육아 # 20
지난 아침, 아직 잠도 덜 깬 아들이 우리 침실로 달려왔다. 밤사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놀라서 보니 엄청 시무룩한 표정에 금세 울 것만 같았다.
“엄마, 하나가 날 떠났나 봐.”
참으로 절절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실제로도 눈물을 글썽거리는 게 누가 봐도 이별의 처연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오지랖 넓은 누이도 사연을 들었다. 이럴 땐 웬일인지 따스해지는 그녀가 친히 나서 떠나간 동생의 여자 친구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얼마 후, 아이들 방에서 환호가 들리고 의기양양하게 하나를 안은 채 그가 나왔다. 얼굴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하나는 호비 동생이다. 그러니까 애들이 보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동물이고, 종은 호랑이다. 말도 못 하던 시절부터 그녀에게 꽂힌 아들은 여전히 말을 할 수 없는 그 인형을 자기의 동생, 여자 친구를 거쳐 암묵적인 연애 상대로 여기고 있다. 우리와는 전혀 합의되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아직 인형을 며느리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지난 아침의 일은 아이의 거친 잠버릇에 애착 인형이 침대 옆 어디 구석에 처박혀 버렸고, 그걸 누나가 꺼내 주었다는 간단한 사건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마냥 간단하지만은 않다.
사실 딸아이는 키우면서 단 한 번도 이성 친구에게 관심을 표현한 적이 없다. 자기를 안 끼워주는 게 섭섭할 정도로 잘 어울려 놀지만 거기까지다. 단지 놀이의 상대일 뿐 꽁냥 거리는 감정의 공유 대상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예 그런 쪽으론 관심이 없다.
그런데 둘째는, 이놈 사내 녀석은, 이미 다섯 살 때부터 조짐이 심상찮았다. 집에 있는 조강지처 인형을 두고서도 유치원에 친구 중 누가 좋다는 소리를 뻔뻔하게 해댔다. 언젠가 같은 반 A가 좋다는 말에 짓궂은 엄마가
“그럼 엄마가 예뻐, 걔가 예뻐?”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씩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회피하는 어이없음을 과시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타격이 좀 있는 듯했다. 그 타격은 며칠 후 같은 부위에 반복됐다. 등원 길에 마주한 A를 보고선 엄마에게 인사도 생략한 채 둘이 손잡고 들어간 것이다. 요즘 애들이 빠르다더니, 그게 둘 중 한 녀석에게 유독 도드라져 나타난 것 같다.
뭐,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니 괜찮아 보였다. 어린 녀석이 뭘 알겠나 싶지만, 그러기엔 일 년에 기껏해야 한 둘 정도로 많지도 않은 대상인 걸로 봐선 그냥 하는 소리도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안타까울 때는 상대방이 아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이를테면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B 같은 경우다. 그녀는 오랫동안 아들의 애틋한 마음을 외면했다. 함께 모둠에서 활동하거나 놀이 시간에 같이 놀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당연히, 부모는 속상했다. 우리 아들이 어때서? 대체 지는 얼마나 잘나서? 등원 길에 애써 기다렸다 B를 마주친 적도 있다. 그리고는 당당히 말했다.
“그래, 네가 B니? 참 예쁘구나. 안녕.”
못난 부모는 어떻게든 아들의 사랑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쳇, 그다지 예쁘지도 않더만.
그러던 게 시간이 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B가 아들의 마음을 조금씩 받아들인 것이다. 함께 놀기도 하고 손도 잡았다고 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괴상한 쪽지 편지도 주고받았다. 너무 빠른 것 같아 걱정하던 부모는 아이의 마음이 받아들여진 게 그저 고맙고 기뻤다. 그렇게 기꺼이 둘의 미래를 축복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B가 유치원을 옮기게 됐다. 이제야 좀 친해졌는데. 아들은 물론이고 우리의 마음도 아팠다. 곧 B가 보고 싶어 지면 어쩌냐는 아이의 외침이 안타까웠고, 그 마음은 B가 없는 첫 등원에 더 곤두섰다.
그런데 그날은, 잔뜩 걱정한 게 무색하리만치 매우 신나게 집에 돌아왔다. 내심 B의 빈자리 때문에 신경 썼던 엄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 B가 없어서 안 허전했어?”
“응. 오늘 새 친구 C가 새로 왔는데, 걔랑 엄청 친해졌어.”
새 친구 C와 D가 반에 합류했고 그중 C는 꽤 예쁜 아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