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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Sep 19. 2023

공원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이야기 속 나만의 이야기

: 거리의 악사

글 곤살로 모우레, 그림 알리시아 바렐라,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북극곰, 2016)



붉은 물고기가 공원을 헤엄친다는 내용의 제목과 공원 한복판에 서 있는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붉은 물고기의 그림이 시선을 뺏는다. 공원에 물고기가 있다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그 물고기가 공원을 물속처럼 헤엄치고 다닌다는 것은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공원은 개방적인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지나치는 곳이다. 사람들은 공원에서 쉬기 위해서 오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오기도 하고, 운동을 하러 오기도 한다. 공원을 찾는 이유는 비슷하지만, 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공원을 찾는다. 



물속을 헤엄치듯 공원을 휘젓고 다니는 붉은 물고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다양한 인생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평범한 일상 같은 공원 속에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작가는 12장의 그림 속에 ‘떨어진 꽃,’ ‘갑자기 늙었다는 기분이 들다,’ ‘공중으로 떠오른 시인,’ ‘꼬마 과학자,’ ‘골인!,’ ‘개와 고양이,’ ‘플루티스트와 참새’라는 제목으로 7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이 글이 그림을 다 본 뒤에 나와서 작가가 숨겨 놓은 이야기를 만나기 전에 독자는 그림을 따라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만들어 볼 수가 있다. 이 그림책의 매력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일상 같은 그림 속에 그 그림을 읽어내는 사람마다 갖고 있는 자신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단지 공원의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 같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그 공원에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에 이야기가 써지기 시작한다. 



붉은 물고기에 시선이 사로잡혀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의 하루를 만나고,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가 들리고, 그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인생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공원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내가 찾아낸 나만의 이야기는 ‘플루티스트와 참새’였다. 작가는 키예프와 베를린에 있는 음악원에서 7년 동안 공부를 하고 이곳에 온 율리안이라는 플루티스트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가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지만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해서 버스킹을 하는 율리안은 특히 공원에서 연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음악이 음악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빌려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게는 작가의 이 이야기를 만나기 전에 이미 그림 속에서 먼저 만난 나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보고자 한다.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가 만난 거리의 악사          


 


오늘은 용기를 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로 했다. 



나는 목수다. 목수인 내가 사람들 앞에 플루트 연주가로 나섰다. 목수는 내 직업이고, 플루트를 연주하는 것은 내 꿈이다. 



어려서부터 악기를 연주하고 싶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아버지를 따라 목수 일을 배우러 다녔다. 하지만 내 꿈은 포기할 수가 없어 목수 일을 한 지 3년이 좀 지나면서부터 나는 가족들 몰래 악기를 배우러 다녔다.      



음악학원에 갔던 첫날을 잊을 수가 없다. 집 앞에 음악학원이 몇 개 있었지만, 가족들에게 걸릴까 봐 버스로 20분 정도 떨어진 낯선 동네에 있는 음악학원을 찾아갔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바로 음악학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옆 편의점에 앉아 초등학교 수업 종이 몇 번 울리는 동안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에 온갖 말들이 서로 엉겨 붙는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음악학원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문은 내 입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내가 낼 수 있는 시간만을 생각했지 학원 시간이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져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병원이나 주민센터처럼 아침 9시면 문을 여는 줄 알았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할 말을 한 번 더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저렇게 운동장이 작았었나?’ ‘이 동네는 가로수가 밀림처럼 울창하네,’ ‘이 시간에 길에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네,’ ‘길에 쓰레기도 없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덕분에 내 긴장감도 내 몸에서 함께 흘러나가는 것 같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배가 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커다란 공원에 도착했다. 동네에 없던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서로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자신들만의 목적을 갖고 공원을 온 것 같았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유모차를 밀면서 이웃과 이야기하는 사람, 음악을 들으며 뛰는 사람, 나무 아래 앉아 책을 읽는 사람, 벤치에 앉아서 물을 마시는 사람 등 그 공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이 있었다.        



그날 나에게 구체적인 꿈이 생겼다. 이 공원에서 플롯을 연주해 보고 싶었다. 딱 한 곡만 완전히 연주할 수 있게 되면 이 공원의 평화로움에 나의 플롯 연주를 얹어보고 싶어졌다.      



배가 고팠지만, 서둘러 음악학원에 다시 찾아갔다. 이제 음악학원에 가서 어떤 말로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플롯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음악학원에서 나는 어린아이들 속에서 우뚝 솟은 나무 같았다. 음악을 전혀 모르는 나는 피아노도 함께 배우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거칠게 망치질을 하던 내가 음악학원에서는 조심스럽게 피아노와 플롯을 어린아이 다루듯 했다. 


    

흙먼지가 가득 낀 손톱이 부끄러워 손을 몇 번이나 씻어대도 흙먼지가 없던 손톱이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음악학원에 들어서면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태어난 듯한 마음으로 피아노 학원에서 보내는 두세 시간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리고 가는 것 같았다.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나는 쉬는 날이면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선생님이 학원 청소 할 때까지 혼자 피아노와 플롯을 연주했다.      


 

처음에는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그런데 한 곡, 두 곡 연주하면서 방에 갇힌 내 연주가 공기 중에 다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물론 내가 이것을 직업으로 하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연주를 누군가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내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음악학원을 찾은 첫날의 용기를 다시 꺼내어보았다. 그 공원에서 혼자 연주해 보기로 했다.  그날이 오늘이다.     



먼저 백화점에 가서 거금을 주고, 연미복을 샀다. 그다음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연주가처럼 다듬었다. 떨리는 마음보다 설레는 마음이 커졌다. 그런데 막상 공원에 들어서니 두려운 마음이 떨리는 마음도 설레는 마음도 모두 지워버렸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일단 사람이 없는 나무가 눈에 띄었다. 나뭇잎이 별로 없이 나뭇가지가 앙상한 것이 뻘쭘한 내 마음 같았다.      


나는 쭈볏쭈볏 걸어서 그 나무 아래 섰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듯했다. 그런데도 자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악보를 펼쳤다. 이것은 장식일 뿐이다. 혼자 서서 하는 것이 외로워서 악보를 펼쳐 놓았다. 지금까지 수 만 번 연습한 악보였다. 눈감고도 훤히 보인다. 나는 눈을 감아 보았다. 



떨리는 내 입술을 플롯에 의지하며 연주를 시작했다. 눈을 감고 얼마나 연주를 했을까, 서서히 내 마음의 진동이 사라지고, 내 연주에 내가 안정을 찾았다. 내 연주가 나를 위로해 준 기분이다. 눈을 살포시 떴다.      



주변에 새들만 모였다. 내 연주를 들어주는 사람들은 없고, 새들만 있었다. 사람들이 없다는 서운함이 느껴질 찰나에 신기하게도 사람이 없고 새들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새들이 내 음악을 이해해 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새들을 위한 연주를 하자는 생각이 들면서 연주에 내가 점점 더 몰입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새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고양이까지 와서 나무에 오르고, 지나가던 개도 그 고양이를 따라왔다.  동물들과 소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신나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와서 내 앞에 섰다. 순간 긴장이 되었다. 동물들은 내 연주에 대한 댓글은 달 수 없지만, 사람들은 신랄하게 내 연주에 대한 댓글을 달 것 같았다. 그 댓글은 예상이 되지 않는다.      


쑥스럽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연주를 이어나가는데 새 한 마리가 나를 응원하듯이 플롯 끝에 앉았다.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알 수 없는 댓글처럼만 느껴졌는데, 서서히 그들의 시선에서 나의 음악이 느껴졌다. 그들과의 소통은 동물들과의 소통과는 달랐다. 나에게 앞으로도 계속 연주해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새들과 사람들과 함께 이 연주를 즐기게 되었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를 끝으로 나는 내 플롯 위에 앉은 새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 남자를 선택한 이유는 이 남자의 모습이 제 모습 같았어요.      

이 남자가 프로 연주가였다면 공원에 혼자 서서 어색하게 연주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마추어 연주가로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용기 있게 공원 한복판에 서 있을 거예요.



저는 제가 글을 쓰면서 처음에는 혼자만 만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고, 또 그 순간이 지나면서는 그것으로 수익이 나기도 바랬던 것 같아요. 혼자만 하는 작업은 뭔가 발전이 없는 것 같고,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의심이 들거든요. 



이 연주가도 그런 것 같았어요. 



방구석 연주가를 벗어나고 싶었을 것 같아요. 



어떤 예술이든지 혼자 하는 것은 날개가 달리지 않는 것 같아요. 예술은 소통할 때 비로소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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