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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ul 07. 2020

합리적인 선택

고작 30년 인생이 말하는 인생학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선택의 순간 우리는 고민을 한다.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또 이것을 하거나 저것을 하거나.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 선택은 정말로 나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도출한 합리적 선택일까? 이번 이야기는 우리의 직 간접적 경험과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결정한 합리적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늘 우리는 우리가 하는 선택이 우리의 기대를 100이면 100, 충족시키길 바란다. 하지만 세상사 완벽한 예측은 없으며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일정 부분의 이득을 포기하는 차선책을 택할 때가 있다. 때에 따라서는 예측이 완전히 빗나가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그에 따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차악이 되는 선택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처럼 어떤 선택에 있어서 합리적이다라는 말이 꼭 좋은 상황을 설명한다고 할 수는 없다. 좋은 선택이라기보다는 많은 상황이 주는 제약 속에서 내가(속한 집단이) 기대하는 바를 비교적 가장 많이, 잘 충족시킬 수 있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의 공유와 사유의 과정을 겪은 선택은 최고의 이익과 최저의 손해를 도출하기 때문에 상당히 논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합리적 선택을 할 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수치화할 수 없는 감성적 요소를 끌어들인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논리적이라고 내놓은 결과물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집단에게는 그 감성에 기반을 둔 가치가 사회적으로 마땅히 고려해야만 하는 사안들일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인권, 환경, 윤리와 같은 문제들 말이다. 그런데, 개인의 경우엔 이 감성이 양심의 차원을 넘어 모든 논리를 흩뜨리고 완전히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마음을 부추기기도 한다. 사랑, 동정심, 자존감 같은 것들 말이다. (아마 당신이 겪었던 첫사랑, 첫 연애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갈 수도)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기에 특별하다. 누군가는 감정이라는 것으로 인간의 존재를 설명하기도 한다(누가 그랬더라... 아무도 그런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없다면 내가 말했다고 하자) 그만큼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만 언제나 선택으로 가는 과정에서 이 감성은 논외로 취급받는다. 상황이 닥치지 않는 이상 감성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세운 완벽한 논리 또는 직감에 크게 영향을 끼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에 감정조절도 못하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황이 역전되고 논리가 뒤집어진 내막을 보면, 많은 경우에 감성이 원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해보자. 실제로 있는 영화의 내용은 아니지만,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이야기로. 한 살인청부업자가 있다. 냉혈한인 그는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아주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우연히 누군가와 유대를 쌓을 기회가 주어지고 아니나 다를까, 곧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가 속한 조직에서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음 타깃이 되었음을 알려온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조직이 아니다. 자신이 업으로 삼았고 자신의 미래가 달려있는 조직이 아니라, 처음 느껴본 사랑에 자신이 쌓아왔던 삶을 모조리 태워버리는 선택을 한다. 그에게 합리적인 선택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겠지만, 그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주인공은 분명 무엇이 자신의 미래에 더 도움이 되는 선택인지 알고 있었다. 아니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사람 대부분은 상대를 죽이는 것이 주인공의 미래를 보장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게 맞다고 생각은 하지만, 과연 몇 명이나 저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선택을 할까? 인간은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가? 그렇다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가?


사실 어떤 사상이나 이념도 생각한 대로 행동한다면 완벽한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유토피아를 경험하거나 경험했다는 세대를 본 적이 없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예측되고 가변적이지 않은 반복되는 일상에 우리는 조금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인간이기보다 로봇에 가까울 테니 말이다. (뭐,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고 복잡하며 가변적이고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서 잔잔한 세상을 원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에겐 낭만이 있다. 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진 못할 지라도 감성은 인간의 성장을 끌어낸다. 좋지 않은 결과를 우리는 실패로 인식하는데, 그 실패를 통해서 감성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감성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고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결혼이라는 세상 비합리적인 제도와 관습을 우리는 왜 반복하는가? 단순히 종의 보존을 위해서?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하며 치명적인지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정이라는 유대가 얼마나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지 알기 때문이다. 결국 감성은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선택의 순간에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할 ‘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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