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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꺼풀 오이씨 Mar 17. 2020

쌍둥이들과 함께 자라가기

처음 

  2017년 3월 어느 날.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약간의 힘을 준채로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간호사가 와서 일련의 과정들을 설명하고, 설명을 마치자 마자 침대를 밀고 분만실로 사라졌다. 아내가 누워 있던 침대의 바퀴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흠사 아내는 구름을 타고 공중에 떠서 가듯이 들어갔다. 오후 2:23

 바로 옆 산모보호자 분만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또 다른 산모의 가족도 있었다. 남편 어머니(누구의 어머니인지는 모르겠다.). 분만실 안 쪽에서 산통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려나왔다. 분만실 문이 열릴 때 더 크게 들렸다가 닫히면 조금 작아졌다가, 마치 파도가 밀려왔다 나가듯 나름의 리듬이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그냥 멍 하게 있었다. 마치 멍때리는 것은 정신건강에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 마냥 있었다. 서 있었는지, 앉아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멍........................................

 응애! 응애!

 우리 애들이다! 

 누가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 저 문 너머에서는 여러 신생아들이 울고 있었다. 그런데 내 귀에 명확하게 들리는 두 아이들의 울음 소리. 우리 애들이다! 

 이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분만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아내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는다.

 저요.

 따라들어 오라고 한다. 주저함 없이. 설레임과 함께.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빨라지는 심장 박동도 느낄 수 있었다.

 신생아 검사실. 두 아이들이 누워 있었다. 지금 아이들이 누워 있던 그 장면을 떠 올리면 눈물부터 나는데, 그 때는 덤덤했다. 아니면 너무 큰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덤덤해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아마 후자이지 싶다.

 이 아이부터 볼께요. 

 간호사 선생님의 상냥하지만 기계적인 말투. 오른쪽의 아이 발치에 서 계신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보여주신다. 머리의 천공이 열려있는지, 안구는 만져지는지, 콧구멍은 두개인지 귓바퀴는 있는지.......발가락은 다섯개인지, 척추는 만져지는지를 마지막으로 외관상 검사를 마쳤다.

 바로 이어지는 왼쪽 아이 발치에 서 계신 간호사 선생님의 검사. 역시 상냥하지만 기계적이다. 이런 일에는 기계적인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해야 하고 별일 아니며 아이에게 아무런 위해가 없는 일인데도, 최선을 다해 울는 아이가 최대한 안 힘들려면 말이다.

 아이들을 낳기 전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담당의사 선생님 포함해서)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혹은 아빠가 아이를 처음 만나는 순간을 무조건 동영상으로 찍어 두라고 했다. 그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난 신생아 검사실에 들어서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모드로 해서 손에 들고 있었다. 수억만 화소인 맨 눈으로 아이들을 만나지 못해서 아쉽지만, 간혹 이 때의 아이들을 보고 싶을 때 마다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놀라운 이야기 하나. 신생아 검사실에 들어 섰을 때 오른쪽 아이부터 검사한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나는 그 아이에게 좀 더 다가가서 이름을 불렀다. 

 아빠왔어. D야. 보고 싶었어. 안 울어도 돼. 괜찮아 괜찮아.

 아이 울음이 잦아들었다. 그러기를 바라고 한 행동이었지만 정말 그러니 신기했다. 왼쪽 아이도 마찬가지. 아이들은 모든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누군가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만난 첫 순간의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이며 나 역시 동의한다.

 아이들을 만난 첫 순간의 충격은 생경했다. 나 라는 인생에 두 개의 커다란 소행성이 충돌한 느낌이었다. 충격의 세기를 계속 느끼는 충돌. 나름 준비한다고 했지만 그 준비를 초라하게 만든 충돌.

 아내와 나는 어느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아이들을 돌봤다. 아내는 모든 시간을 아이들에게 쏟아 부었고, 나는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아내는 엄마라는 커다란 품으로 아이들을 소붓이 품어 안았고, 나는 아빠라는 이름으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끌어 안고 걸음을 옮겼다. 

 

 

AM 2:몇분
두 뼘 남짓 되는 아이의 잠투정을 달래다 곁에서 잠든 아내의 모습에서 말로 표현 못할 숭고함과 포근함을 느낍니다.
AM 6:몇분
밤 새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다 까무룩 잠이 든 내 귀에 거실에서 다른 아이를 달래는 아내의 자장가가 문 틈을 지나쳐 나에게 들려 옵니다.  

각자, 각자의 사정들로 살아갑니다. 나는 지난 밤, 지난 새벽. 천국을 보고 들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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