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질문
아빠 나 왜 태어났어?
3살, 정확히 말하면 만 2살 몇개월인 우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날이면 많은, 정말 굉장히 많은 질문을 받는다. 가장 기억나는 질문은
아빠 나 왜 태어났어?
머리에 쿵! 하고 충격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 질풍노도의 시기에 친구들과 장난삼아 했던, 얼마쯤은 상처를 주기 위한 의도로 했던 말을 아이에게 듣다니........
아이 질문을 정확히 풀자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싶다. '아빠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정도 이지 않을까 싶다. 자기가 어떻게 세상에 왔는지, 스스로의 기원에 대해서 물었던 것이지, 자기가 태어난 정당성을 묻는 것은 아니지 싶다. 이 질문을 했을 때 아이가 하고 있던 동작과 전후 맥락을 보면 그렇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이에게서 질문을 받자마자 속으로 이전에 내가 함부로 지껄여 상처를 주었던,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에게 미안함을 말했다. 그리고 다른 때 보다 더 정성을 들여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내 정성을 알아차린 건지 다른 질문보다 버벅거리면서 답을 했는데도 아이는 만족한다는 의사를 표시하며 다른 놀이를 하러 베란다로 나갔다.
아이들은 수많은 질문을 한다. 어떤 때는 대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질문이 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질문을 쏟아낸다. 또 어떤 때는 건성으로 묻는 것 같아서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한 어절도 놓치지 않겠다는 눈망울을 본 적도 있다.
아이에게 부모는 우주이다. 부모의 모든 것이 아이에게 전부이다. 엄마 아빠의 말투 행동 태도 눈빛 모든 것에 아이는 자기 인생을 의탁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떤 질문을 하던 질문마다 정성을 다해서 답을 해준다. 마치 입 안에 한 숟가락 크게 들어온 현미밥알 처럼, 그 현미밥알 한 알 한 알 전부 꼭 꼭 씹어서 껍질 안의 쌀알들을 다 으깨겠다는 마음으로 답을 해준다.
대답은 한켜 한켜 쌓인다. 켜켜이 쌓인 대답은 아이 마음 안에서 부모에 대한 신뢰로 곰삭아간다. 자기에게 정성을 다하는 부모의 태도를 보며 아이들은 부모를 신뢰하고 세상을 신뢰하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신뢰하게 된다.
얼마 전의 일이다. 아내와 나는 아직 아이들에게 사탕류를 주지 않고 있다. (그보다 더 달달한 것들을 이미 먹고 있지만 말이다.) D가 마루에서 놀다가 비타민 캔디를 하나 주었다. 집을 잘 치우지 않으니 그런 것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아이가 나에게 들고 왔다.
아빠. 이거 뭐야?
그거 엄마가 너희들 병원 갔을 때 받아온 비타민이야
비타민이뭐야?
몸이 자라거나 움질일 때 필요한건데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일이 생기진 않아. 밥이나 고기 물이랑은 달라. 밥이랑 고기 물은 꼭 먹어야 되는건데 비타민은 밥이랑 반찬 먹다보면 알아서 먹게 돼. 그래서 너 손에 들고 있는 비타민 일부러 먹지 않아도 돼. 먹어볼래?
먹겠다고 할까봐 두근거렸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이 우리 부부의 육아 철칙 가운데 하나여서 이렇게 이야기 해주었다.
가만히 비타민 사탕 봉지를 보다가 휙 던져 버렸다.
왜 안먹어
그냥 안먹을래
어떤 물음에도 정성껏 대답을 해 주고, 대답을 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아니라, 많이 알고 있지만 표현이 쉽지 않은 인격체로 대하면 아이는 알아서 부모 맘을 알고 행동해 줄 때가 많다. 그리고 부모를 신뢰한다.
우리 부부의 이런 태도 때문인지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굉장히 신뢰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신뢰가 깨지지 않게 계속 애쓰고 있다. 최선을 다해서.
아이가 무언가를 물어 올 때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일단 정성스레 답을 해주자. 그러면 아이는 신뢰라는 디딤돌을 가슴에 하나 더 놓게 된다. 아이가 단단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