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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속에 비친 내 모습

아이들을 통해 나를 유추해본다.

by 쌍꺼풀 오이씨

어느 날 밤이었다. 아이 엄마 귀가가 늦어져서 아이들을 재우려고 같이 누웠다. (늘 같이 자고 있지만 뭐 그냥 아내가 늦었다고 한 번 말하고 싶었달까......)

아이들은 늘 '품에 안겨 자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한다. 엄마 품에, 아빠 품에 안겨서 잠들고 싶다고(언제 들어도 감동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문장이다. 고맙다 아가들아^^*)

그렇게 품에 안겨 누워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쏟아지는 졸음 사이로 쏟아내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호가 이런 질문을 했다. '아빠 왜 요새 화 많이 내?'

멍.................................................................................... 핑...................................................... 도는 눈물. 그리곤 두루룩 떨어지는 눈물.

내가 그랬구나. 요즘 그랬구나. 그냥 요즘 내가 힘들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화를 내고 있었구나.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을 말하고 있었구나.

아이들에게 드는 미안함이 첫 째이자 가장 컸고, 그다음에 나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그림들. 어린 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을까? 내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대했을까?)? 내 명료한 기억 속에는 없는, 하지만 무의식 어딘가, 그리고 내 행동과 말투, 의식구조 어딘가에 남아 있을 그때의 기억과 감정들. 문득 궁금해졌다.


이쯤 해서 이야기의 전개상, 이해를 돕기 위해 하면 좋지만, 좀 미안한 이야기 하나. 우리 부모님들은 양육의 경험이 거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키운 경험이나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내 어린 시절, 아가 시절이 궁금해서 '나는 저 때 어땠어요?' 하고 물어보면 부모님이 해 준 대답은 항상 ' 다른 애들이랑 똑같지 뭐'였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어떤 질문을 해도 답은 저 대답 하나. 점점 궁금해졌다. 도대체 다른 애들은 어땠길래. 그 다른 애들은 누구인가? 등등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부모님들은 나를 키운 경험이 없다는 것. 나를 육아한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약간 충격, 약간 배신감 그리고 찾아온 이해.

무슨 이해인고 하니, 뭐랄까 내 안에 부모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랄까 그런 건 없지 싶었다. 근데 저 사실을 알고 나니 내 안에 없는 게 뭔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정서적 교감. 거의 없다. 없는 것으로 부모님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없다는 거다. 양육의 시간이 없으니 서로 접촉이 없고, 접촉이 없으니 서로에 대한 정보도 없고, 정보가 없으니 이해도 없고 이해도 없으니 애정도도 떨어지고 애정도도 떨어지니 정서적 교감이 없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난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가 생기면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 양육에 나름 적극적이다. 내 인생 자체가 반면교사랄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각 아이만의 특징이 있다. 외형적으로는 한 아이는 엄마를, 한 아이는 나를 닮았다. 성격도 닮았다. 엄마를 닮고 나는 닮고.

나를 닮은 아이를 보면서 내가 부모에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본다.' 사랑을 더 많이 요구하고, 호기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죽도록 떼쓰고, 겁 많고, 예민하고, 잠귀 밝고, 더운 거 싫어하고, 우유는 따뜻하고 좋아하고, 회 좋아하고(만 3살인데 회를 넙죽넙죽 먹는다 ㅡ.,ㅡ;;;;;) 등등등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낀 것들이 참 많고, 육아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동시에 아이들을 통해서 보는 내 모습, 현재의 나, 어릴 때의 나. 나를 보게 되는 기쁨도 크다. 그 기쁨도 나누고 싶다.

앞에 주저리주저리 썼지만, 부모와 정서적 교감이 없음은 실은 나에겐 상처이다. 당연히 상처이지 무슨 훈장이나 영광스러운 흉터는 아니잖는가. 하지만 그 상처가 아이들을 통해서, 아이들이 마구 마구 내뿜어 내는 아이다움을 통해서 보듬어진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감사하고 기쁘다.


지금은 새벽 1:33. 자고 일어나면 내일 하루 종일 아이들과 뒹굴어야 한다.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되고. 내일은 아이들의 어떤 모습을 만나게 될까? 내일은 아이들을 통해서 어땠을 나를 만나게 될까? 기대되고 긴장되고 복잡한 마음.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아빠 햇빛 떴어요! 일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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