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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왜? 왜? 백만개의 왜

끊임없이 '왜?'라는 물음을 던지는 아이를 보며

by 쌍꺼풀 오이씨

우리 아이들은 2돌 지나 몇 개월 후부터 말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엄마' , '아빠' 그리고 힘주어 말하는 '응!' 이 정도였다. 소수의 단어만 말을 하길래 그냥 저러다 늘겠지, 초조하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 이 상태가 몇 년이 더 계속되어도 괜찮다는 생각도 하고 있기는 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정말 '폭발적'으로 말이 늘기 시작했다. 쓰는 단어도 부쩍부쩍 늘고, 어느 날인가 책을 읽어 주는데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징검다리~!!' 하고 외치는데, 소리가 커서 놀라기도 했지만, 징검다리를 알고 있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초반에는 단어 2개 정도 이어서 말을 하다가, 갑자기 나름의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른의 기준으로 보면 중구난방이었지만,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서 말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간혹 자기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말을 고르기 위해 말을 멈추는 모습도 보였다. 어느 때이건 절대로 아이들의 말을 끊지 않았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안다고 해도 정답을 말해 버리듯 그 말을 말하지 않았다. 눈을 맞추고 기다려주고, 아이가 말을 다 하고 나면 정정해서 다시 문장을 말해주고, 마치 탁구를 치듯 말을 주고받았다. 아이는 아이 버전으로 말을 하고, 나는 내 버전으로 말을 하고...... 내가 자기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 때 아이 얼굴에 퍼지는 옅은 미소는 하늘에 걸린 무지개보다 더 영롱하다.


세 돌이 다 된 지금은 놀라울 정도다.


며칠 전 오후 집에 있던 아이들이 산에 가고 싶다고 해서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우리 아이들은 집 안에선 거의 나체로 지낸다. 한 겨울에도 그랬다. 감기는 온도보다는 습도가 낮았을 때 걸리는 병이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어서 안 말렸다. 게다가 아이들은 몸에 열이 많은지 옷을 입혀도 어느샌가 벗어 버린다.). 집에서 나와 아파트 뒷산으로 가는 길목에 계곡이 있다. 이 계곡을 우리는 '우리 계곡'이라고 부르고 참 좋아한다. 아이들이 계곡도 보고 가자고 해서 계곡이 보이는 곳에 도착한 순간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나름 으스스 매서운 바람이었다. 몸이 찌뿌둥해서 산에 가기 싫었던 내가 아이들에게 "얘들아, 춥다. 집에 가자" 아이들도 춥다고 몸을 움츠리게 만든 바람이어서 내 말을 순순히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2호의 대답에 정말 크게 웃었다. "아빠, 우리 추우니까 빵집 가요. 빵집은 따뜻해요." 말의 논리는 둘째치고 아이의 말에 녹아 있는 빵집에 가고자 하는 의지를 물리치는 건 아니다 싶어서 가자고 하고 노래 부르면서 랄랄라 하고 빵집으로 향했다.


빵집으로 가는 동안도 바람 불고, 아이들 입에서도 "으~ 추워"가 계속 흘러나왔다. 빵집에 도착해서 각자 먹고 싶은 빵을 고른 후에 2호가 내 손을 잡으면서 한 말에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아빠 여기 따뜻하니까 놀다가요" "크크크 그래 그래. 따끈한 우유랑 빵 먹고 몸 좀 녹이다 가자" "몸 녹여가 뭐예요?" "추운데 있다가 와서 춥지요? 따뜻한 데서 있자. 이런 말이에요" 아이들하고 대화를 하면 말의 의미를 곱씹게 되어서 참 좋다.


주고받는 대화면 재미있고 정말 좋은데, 갑자기 어느 시점부터 "왜?"만 할 때가 있다. 몇 번 받아주다 보면 울컥할 때가 있다.


작년 봄에 고등학교 동창 식구들과 식사를 할 때였다. 그 친구는 아이가 중학생 초등학교 5학년 이렇게 두 명이었다.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자기 아이들 키울 때 생각난다며 예전 이야기를 하다가 나에게 "야~ 저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어느 때부터 왜, 왜, 왜, 만 할 때가 와. 그땐 정말 미친다." 그게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젠 안다. 정말 잘 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중에 제일 많이 듣는 단어는 "왜?"이다. 계속되는 한 글자 질문을 듣다 보면 궁금해진다. "이 아이는 왜 이걸 묻는 걸까?" 아마 세상천지 모든 게 다 궁금해서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든다.


끊이지 않고 밀려오는 "왜?"에 정성껏 대답을 한다. 정성껏 대답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정도면 그만하겠지.'도 들어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내 의도 따위엔 관심도 없고, 어떤 때는 일부러 모른척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럴 때 욱! 이 나를 친다. 이때! 바로 이때! 침 한 번 꿀꺽~ 숨 한번 후~ (대신 아이 모르게, 알게 하면 바로 "아빠 왜 후~ 해?"하고 물어온다.)


계속 던지는 "왜?"를 힘들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는 나하고 더 단단한 끈을 만들고 싶은가 보다.' , '지금 한 번 더 대답해 주면 나중에 이 아이가 다른 이들의 마음을 한 번 더 깊게 봐줄 것이다, ' 이렇게. 그리고 특히 후자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다.


반복되는 "왜?"는 아이가 정말 궁금한 것일 수도, 자기를 바라보는 부모의 진지함을 보고 싶은 열망 일수도, 자신이 받아들여진다는 넉넉함을 경험하는 시간일 수도, 혹은 부모와 한 마디라도 더 섞고 싶은 아이의 갈망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이든 하나의 "왜?"도 그냥 흘려보내거나, 짜증과 화에 날려 보낼 "왜?"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왜?"이지만 모두 보석같이 아름다운 "왜?"이다.


아가야 고마워. 나에게 "왜?"라고 물어봐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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