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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un 26. 2021

조증 환자의 직장 생활


  흔히 조증이라 하면 언제나 들떠 있을 것 같지만, 실은 다양한 방면으로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 않으려는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끊임없이 나오고, 잠을 아무리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다. 자신감이 솟아서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고, 많은 생각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서 가만히 있어도 어지럽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증상은 주의가 산만해져 하나의 일을 여유롭고 진득하게 하기 어렵다는 것과 직장에서의 성적을 그대로 투영해 비판을 받으면 내 모든 능력을 폄훼한다는 거다.


  그만둔 직장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덥석 승낙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감정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새로 입사한 사람들과 친해지느라 기가 쏙 빠졌다. 와중에 강의를 준비하고 엄마와 아빠의 응석을 받느라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순식간에 한 달이 흐른 기분이다.


  출근하는 동안 여러 생각을 했는데, 그중 세 가지를 꼽자면 세월과 글과 돈이다. 많은 사랑으로 내 책은 무명작가임에도 천 권이나 팔렸는데 영수증에는 마이너스가 찍혀 있었다. 그 말은 돌아오는 인세가 백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문예창작과를 다니면서도 인세에 대한 공부는 접어둔 어느 사회초년생은 그 금액을 보고 화들짝 놀라 빠르게 창을 껐다. 돈 때문에 글을 쓴 건 절대 아니었지만 몇 년 써둔 글을 두 달 내내 묶은 수고비 치고는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시에서 받는 다섯 회차의 에세이 강의와 엇비슷하니 다시 한번 말과 글의 벌이에 대해 곱씹어본 계기가 되었다.


  글로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차차 흩어지자 내 모든 에너지는 직장으로 향했다.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는 뜻은 내가 필요하다는 말이고, 마침 나는 세상에서 내 존재란 얼마나 작고 귀여운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튕기지 않고 빠르게 승낙했다. 어차피 잠은 별로 안 자도 피곤하지 않기 때문에 첫날부터 내내 출근 두 시간 전에 회사를 나갔다. 다른 직장인은 지각할까 전전긍긍인데, 나는 두 시간이나 일찍 나왔으니 내가 생각해도 웃겼다. 처음에는 글을 쓰려했지만 직장에서 성과를 내야 세상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압박감에 마케팅 공부를 했다. 오랜만에 마케터를 하려니 머리가 핑핑 돌았다. 쉬려고 클릭한 기사에서 평범한 마케터는 기계에 밀려 사라질 수 있다는 글을 읽었다. 열심히 잠재웠던 불안함이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 우선 오늘만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잡념을 밀어냈다. 괜한 걱정이 늘어나면 그럴법한 해결책이 나오는 것보다 흰머리가 더 많이 나온다.


  요즘의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말을 자주 더듬거린다. 공적인 말과 사적인 말을 구분하지 못해 속으로 몇 번 되뇐 뒤에야 입을 뗀다. 이건 직장뿐만 아니라 강의에서도 약점으로 비칠 수 있으니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 차근차근 말을 연습한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글도, 말도, 예의와 겸손도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몸에 배이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언뜻 보면 멋지게 쓰는 듯 보이지만 사실 써두고도 내가 무슨 말을 썼나 잊어버리는 모습을 모두 담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은 이제껏 내가 써둔 다른 글과 달리 주제가 없다. 제목에는 직장을 써놓고 정작 직장 얘기는 얼마 하지도 않았다. 그저 생존 신고를 하고 싶었다. 얼마나 다닐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직장을 다니고 있고요. 맨 정신으로 글을 쓰기 위해 약도 꼬박꼬박 먹고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독자 분들에게 용기 내어 애정을 표하려 명상으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답니다.


  퇴근을 하는데 등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무얼 시키지도, 서울에서 내게 등기를 보낸다는 연락도 없었는데 무슨 등기일까 싶었다. 봉투 겉면에 자살예방센터 담당자의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유족 치료비 지원 사업을 위해 필수로 설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잘못된 생각은 들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고 나는 친구와 대화하는 상황이 아니므로 마음 편히 솔직하게 동그라미를 쳤다. 이대로는 담당자가 파견 나와 내 심리 상태를 점검할 것 같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치료비로 백만 원의 금액을 주는데 거짓말은 치고 싶지 않았다. 본가에서의 생활은 아늑하며 조급하고 고요하며 소란스럽다. 그제의 나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각기 다르다. 그 다른 면이 점점 비대해져서 가끔은 걱정되고 때로는 설렌다.


  이곳에서 이름과 얼굴을 모두 밝힌 나머지 여기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노라 힘을 줄 때도 있지만, 직장 동료도 가족도 내가 브런치를 하는 걸 알아서 혼자 주눅 들 때가 많다. 약간 그런 느낌이다. 본업은 배우인데 코믹한 예능으로 인기 몰이를 한 나머지 진지한 연기를 했을 때 오글거린다며 웃음보가 터지는 그런 배우가 된 느낌. 내게는 밝은 면도 유쾌한 면도 있는데 왠지 글을 쓸 때만은 치료비를 지원받고 설문조사를 하는 느낌처럼 가감 없이 아픈 면을 쉽게 보여준다. 그래서 사회생활에서도 나를 어두운 사람으로 볼까 봐 걱정돼 일부러 밝은 척을 한다.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가히 존경스럽다. 다들 아픈 면과 아프지 않은 면을 어떻게 적절히 섞을까. 나는 밝아야 할 때 어둡고 진지해야 할 때 웃음을 보이고 만다.


  온라인에서는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성실하게 쓰는 멋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는 말을 할 때 더듬거리고 돈이 없어 사고 싶은 책도 몇 번이나 들었다 놓는 평범한 이십 대다. 비평을 비난으로 오해해 스스로를 갉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여기 살고 있다. 당신은 잘 살고 있을까. 잘 사는 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덜 아프게 살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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