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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Sep 03. 2021

이러나저러나 외롭다면야


01.

마스크 없이 거닐어도 신고받지 않을 무렵의 내 직업은 커뮤니티 마케터였다. 영화나 책으로 사람을 모이게 하고,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운 접점의 이들과 하루 동안 삶의 부분을 나누며 내 세계가 이토록 좁았구나, 하며 자신이 속한 세계의 밖을 염탐하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던 기회였다. 모임 한 번에 다섯 명에서 여덟 명이 모였으니 못해도 한 달에 오십 명 이상은 만나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맑은 낮에도 우두커니 집에 홀로 앉아 있을 때면 과거의 내가 코로나로 사람과 단절이 될지 미리 알고서 분에 넘치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녔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02.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을 켰더니 친한 친구들이 캠퍼스에서 학사모를 던지는 사진이 첫 장을 장식했다. 영어가 지긋지긋하다는 이유로 어학 시험을 포기한 나는 졸업 요건에 들지 않아 이번에도 수료 상태였다.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공부했더라면, 방바닥에 앉아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는 대신 그들 옆에서 좋아요를 함께 받는 신세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자책이 내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졸업식에 초대받았으면 갔을 텐데 싶다가 졸업 못한 사람이 졸업식에 가면 기뻐해야 할 순간에 괜히 주인공들을 눈치 보게 할까 봐 차라리 초대받지 않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런 생각은 반나절만 해도 충분한데 나는 무려 일주일이나 했다. 참고로 이 생각의 끝은 '인생은 혼자인가'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서운한데 차마 말 못 하겠다면 조용히 훌훌 터는 쪽이 심신에 이롭다.


01-2.

오랜만에 직장 동료와 함께 커뮤니티를 참여한 날이었다. 영업시간 제한이나 모임 인원수 제한 같은 규칙도 없어서 밤이어도 온 세상이 소란스럽던 그날,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걷는 와중에 그가 물었다. "집에 가면 어떠세요? 저는 사람들이랑 시끄럽게 몇 박 며칠을 만나고 난 뒤면 집에 갔을 때 그렇게 공허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외향적이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낯선 이에게 먼저 말 거는 쪽이 당연한 사람, 정적이 길어지면 괜히 식은땀이 나는 타입.


02-2.

유튜브에 '인생은 혼자'를 검색했더니 "세상에 내 편은 원래 없어"나 "친구의 기쁨을 진정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은 없어요"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위로를 바라고 찾은 건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얘기에 외로운 밤이 한층 더 외로워졌다. 외로움을 자주 검색하면 못된 알고리즘에 의해 고독사를 한 청년들의 영상이 추천되니 유튜브에 외롭다는 얘기는 되도록 쓰지 않는 게 마음 건강에 이롭다. 그건 그렇고 당장의 나는 친구의 기쁨을 축하할 수 없는 걸까. 세상에 내 편은 없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다만 친구의 삶을 궁금해하는 시기에 내가 힘들다면 기쁨은 물론 슬픔까지도 함께 겪을 여유가 없다는 건 안다. 그러니 내가 건강해지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덩달아 우정도 지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지금 친구의 졸업 선물이나 생일 선물을 고를 여유는 없지만, 힘든 시기를 무사히 이기고 나서는 더 잘 챙겨줄 힘이 생길 테니 말이다.


01-3.

"그러면 집에 갔는데, 너무 외로울 때 어떻게 하세요?" 내가 묻자 그가 뒷짐을 지고 작은 보폭으로 천천히 걸음을 뗐다. "또 친구를 만나요. 지금 자냐? 문자 보내고. 깨 있으면 바로 만나러 가고요. 가까운 편의점에서 맥주라도 마시러 얼른 나가죠." 그는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낮에는 직장에서, 저녁에는 커뮤니티에서 사람을 만나야 하고 주말에는 연인과 데이트를 할 테니 혼자 있을 시간이 극히 적었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과 시끄럽게 얘기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누군가를 만날 힘이 어떻게 생기냐고 묻자 그가 답했다. "그래서 최대한 집에 가면 쓰러지게끔 노는 편이에요."


02-3.

아픈 얘기와 즐거운 얘기가 손을 잡고 티비 앞에 나왔을 때 둘 다 비등비등한 비중으로 내게 해석되는 날에 나는 연락처에 있는 사람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잘 지내냐! 보고 싶다!"라고 외칠 예정이다. 그런데 지금은 "나야 잘 지내지, 요아 너는?"이라는 질문에 오히려 "사실 나는 잘 못 지내……"로 답할 게 빤히 보이므로 우선은 지금 나를 챙겨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했다.


외로움과 패러글라이딩이 무슨 상관인가 궁금해하실 분에게 잠깐 귀띔하자면, 인기 없는 저녁 시간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테니까 나는 아무도 없는 하늘에서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다. 매일 저녁 땅에서 외로워했는데 내일은 신기하게 하늘에서 외로워할 수 있다. 물론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뒤에 조종해주시는 안전 요원이 계시니까. 뒤에서 간혹 "안 무서우세요?"라고 물어주실 분에게 "네! 안 무서워요!"라고 말할 수 있듯, 가까운 미래에는 "이제 마음 괜찮아?"라고 물었을 때 "당연!"이라고 소리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비행이 여러 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멋진 연습이 되기를.


01-4.

저도 집에 가면 엄청 엄청 외로워요, 라는 말을 속으로 담았다. 여기서 이 얘기를 하면 이 사람이 계속 외로움에게 질 것 같아서였다. 꼭 이겨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로움을 맞닥뜨리면 두려워할지 모르니까. 나는 자주 외로움에게 지는 편이지만 때때로 이긴 적도 있어서 얘기를 두 갈래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래서 바로 이 말을 꺼내 놓았다.


"저는 그래서 혼자 있는데 외로우면, 외로움을 그린 그림 같은 거 감상하면서 찐득찐득한 음악 틀어놓고 즐겨요. 아, 나 완전 외롭고 고독하구만. 그렇게 조금만 참으면 나중에 웃기거든요." 괜히 제가 귀여워 보이고, 라는 말은 그대로 넣어두었다. 거기까지는 오버인 것 같아서.


아무튼 이 대화가 나만의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주유소』 에드워드 호퍼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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