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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ul 09. 2021

몸을 움직인다는 이유로
타인을 미워하기 쉬운 세상에서

 

  상대에게 미소를 보이는 방식이 바뀌었다. 입꼬리를 올려도 누구 하나 볼 수 없으니 과장되게 눈을 접는다.


  코로나가 나타난 지 어느새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여기서 딱 2주만, 아니 한 달만 더 버티면 백신도 퍼지고 나아지겠지 싶었지만 다시 4차 대유행이 시작됐다. 어렵사리 겨울을 보냈더니 또 천 명을 넘었다나. 세계 사망자는 무려 400만 명을 넘었고 델타 변이와 델타 플러스 변이 소식까지 들린다. 이러다간 오메가 변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질 것 같다.


  최근 석 달 사이 재외공관 두 곳에서 외교관 두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타지에서 가족을 본 지 오래, 귀국이 가능해도 양쪽 나라의 의무 격리를 지키다 보면 격리만 하다 휴가가 끝나 고립감이 날로 깊어졌다고. 창부 이래 처음으로 코로나 블루가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번 주에는 코로나로 생활고를 호소한 기초수급자 가족 세 명이 슬픈 선택을 했다. 감염병 시대에는 나라 전체의 긴장도가 높아지며 서로 단합하느라 자살률이 감소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 강제로 집 밖을 나오지 말라 소리치는 게 안전한 선택일까. 본가에 내려오기 전 원룸에만 들어 있던 나는 내내 강한 우울감으로 아픈 생각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그러니 아무리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무작정 집에만 있으라 화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아픈 마음을 밖에서 자유로이 풀라고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함만 커졌다. 나는 어떤 말도 함부로 하지 않는 대신 행동을 보이자는 결심을 골랐다. 처음 실행한 건 심술부리는 사람의 배경을 알고자 하는 노력 없이 무작정 손가락질하는 버릇을 놓는 방식. 내 행동을 칭찬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깎아내리는 습관을 없애니 조금 더 편안하게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눈앞에 무거운 짐을 안은 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을 전할까. 손을 내밀어 그의 짐을 덜고 싶어도 이미 내 팔에는 내 몫의 짐이 한가득 들려 있다. 주변에 도움을 구하려 해도 모든 사람이 제 몫의 짐을 안은 채 눈물을 흘리니 나는 구조의 말을 외치는 대신 사랑의 말을 건넨다. 그 과정에서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모두에게 무거운 짐이 있으니 당신도 힘내라는 말은 위험하다. 상처의 무게를 견준다고 나아지는 상황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얘기해도 팔이 곧 떨어질 것 같은 고통에 신음하는 이에게 진심이 다가갈 리 없으니 그저 짐을 이해하는 방법을 택했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어 감히 헤아리기 어렵지만, 그 짐이 참 무거워 보인다고. 이 말을 하고도 힘이 조금 남는다면 언젠가 그 짐을 함께 들고 싶다는 말을 전한다. 고민 끝에 떠올린 최선의 표현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존경스럽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얘기는 쭉 유효하다. 우리는 기약 없는 행복 대신 오전과 오후의 행복을 찾아야 내일을 맞이할 힘이 생긴다. 몸은 떨어져야 하지만 마음은 단합해야 하는 동시대를 보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 오지랖을 부린다. 몸을 움직인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미워하기 가장 쉬운 세상, 사람들이 각자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헤아리고 무작정 손가락질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나는 나의 짐이 천천히 덜어지는 순간 주말마다 고립된 이들을 위한 봉사를 나갈 예정이다. 세상에 자신을 구하고 타인까지 구하는 사람 한 명이 확실히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마음은 조금 더 훈훈해지므로 오늘도 나는 두리번거리며 한 사람의 몫을 덜기 위해 내 몫을 줄이려 애쓴다. 곧 당신에게도 다가가는 사람이 나타날 테니 그 짐의 무게를 한없이 들어야 한다는 불안은 덜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당신이 가장 먼저 당신의 몫을 덜고 타인을 구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버티는 날이 모이면 언젠가는 버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겠지. 적당한 낙관을 잃지 않은 채 이성을 차리고 지금을 직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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